‘국정농단’ 유죄 판결에 편승, “정부 부당개입으로 손실” 주장
ISD 사전단계 중재의향서 제출… 법무부 중재 거부땐 소송절차 시작
금감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인정… 엘리엇 논리에 힘 실어줄 수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절차를 시작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 정권이 두 회사의 합병을 위법으로 판단해 해외 투기자본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다 금융당국이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부정을 저질렀고 결과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해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일 법무부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달 13일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하면서 엘리엇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재의향서는 ISD를 제기하기 전 재판까지 가지 않고 합의할 뜻이 있는지 묻는 절차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던 엘리엇은 합병을 강하게 반대했다. 법원에 합병 주주총회 개최 중지, KCC가 취득한 삼성물산 자사주(5.76%)의 의결권 행사 금지 등의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엘리엇은 항고했지만 이 역시 패소했다.
엘리엇이 이번에 중재의향서를 낸 것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변화된 사정 당국의 법적 판단에 편승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국민연금의 지도·감독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법원의 1, 2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엘리엇이 다시 공세에 나섰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중재를 거부하면 엘리엇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통해 정식 ISD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또 이날 금융감독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1년간 특별감리를 실시한 끝에 분식회계 혐의가 인정된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이를 회사와 감사인 등에 통보했다.
분식회계 논란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1년 설립 이후 4년간 적자를 내다가 2015년 단숨에 1조9000억 원대의 순이익을 내면서 불거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해 세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2015년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회계기준에 따라 관계사로 변경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가치는 기존의 2900억 원(취득가 기준)에서 4조8800억 원(시장가 기준)으로 회계 처리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지분을 늘려 공동 경영을 주장할 권리)을 행사할 수 있어 관계사로 전환했다”고 주장하지만 금감원은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 또 금감원은 삼성물산과 합병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를 보유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회계 처리였다고 판단했다. 최종 감리 결과는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 재계 관계자는 “금감원 감리대로 확정될 경우 엘리엇 주장에 더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투자자-국가 간 소송 ::
(ISD·Investor-State Dispute)
외국인투자가가 상대국 법령 또는 계약 위반 등으로 피해를 본 경우 국제 중재기관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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