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중동 지역의 위기 고조로 3년 6개월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을 넘어섰다. 유가 상승의 여파로 세계 6위 원유 수입국인 한국은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유가와 반대로 움직이는 달러화 가치까지 오르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시장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물가 상승과 자본 유출의 이중고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중동발 위기에 유가 급등
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70.73달러로 마감했다. WTI가 배럴당 70달러 선을 넘은 건 2014년 11월 이후 약 3년 6개월 만이다.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도 배럴당 75.6달러로 거래돼 3년 6개월 만에 75달러를 넘어섰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국제 유가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군사적 보복에 나섰다. 이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대가로 맺은 이란 핵협정(JCPOA)에서 탈퇴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다시 시작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이와 관련된 결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동 문제와는 별개로 원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이 가격 상승세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동 위기로 원유에 대한 수급 불균형이 부각됐으며 수요 증가에 따른 유가 오름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감산 합의도 올해 말까지 연장된 상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배럴당 80달러 선을 목표로 삼고 있다.
○ 고물가에 자본유출 우려 커진 한국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지나친 유가 상승은 경기 회복 흐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 국내 물가 상승률을 자극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가가 10% 오르면 통상 물가 상승률이 0.1%포인트 오른다”며 내수와 투자 둔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약세를 보여온 미국 달러화가 최근 강세로 돌아선 것도 변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상 유가와 달러 가치는 반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7일(현지 시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연중 최고 수준인 92.97까지 올라갔다. 유가 상승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 때문이다.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추세도 달러 강세의 원인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유가가 올라도 원화 강세 덕분에 수입물가가 하락하면서 충격을 상쇄해 왔다. 하지만 달러 강세가 본격화되면 원화가 상대적 약세를 보이면서 유가 상승의 여파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유가 상승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 이탈로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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