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면제’ 숨돌렸던 철강업계, 쿼터제-반덤핑에 다시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5일 03시 00분



14일 한국철강협회는 미국에 수출하는 철강제품의 품목별 쿼터 물량을 발표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미국으로 수출한 연간 물량의 70%에 해당하는 양이다.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통해 미국이 수입 철강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에서 한국을 면제하는 대신 수입 물량을 제한하기로 한 데 대한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품목별 쿼터는 기본형과 개방형으로 구분된다. 기본형 쿼터는 2015∼2017년 대미 수출실적이 있는 업체에 적용되고, 개방형 쿼터는 나중에라도 수출할 수 있는 신규업체에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다. 이날부터 미국에 철강을 수출하려는 철강업체는 반드시 협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이끌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철강 제품 관세 부과 면제가 최대 성과’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철강업체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관세 면제를 받는 대가로 수출량을 최근 3년 물량의 70%로 정한 게 우리에게 이득인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업체들은 쿼터를 넘어서는 물량은 아예 수출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쿼터가 작동하는 시점이 미국이 다른 나라에 관세 부과를 적용하는 5월로 예상됐지만 미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쿼터 적용을 앞두고 수출량을 늘렸던 국내 업체들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쿼터 물량이 지난해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강관 업체 상황이 심각하다. 이미 올해 수출 쿼터의 70%가량을 채운 상태다. 하반기에 가면 중견업체 중에서는 공장을 세우는 곳도 있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개별 품목과 기업에 부과하는 반덤핑 관세 등 미국이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여전한 점에 대해서도 국내 철강업계는 고민이 크다. 실제 미국 정부는 최근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강화하고 있다. 철강업체 관계자 A 씨는 “간단히 말해 나아진 게 없다. 앞으로도 나아질 게 없다”고 말했다.

유정용강관을 주로 생산하는 중견업체 넥스틸은 지난달 미국 상무부로부터 75.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았다. 2015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수출한 유정용강관에 부과된 관세인데 지난해 10월 예비판정 때 받은 관세율(46.4%)보다 약 29.4%포인트 더 받았다. 사실상 미국 수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미국 상무부는 반덤핑 관세율을 높인 이유로 ‘불리한 가용정보(AFA·Adverse Facts Available)’를 들었다.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지 않을 때 적용하는 조치다. 넥스틸은 상무부에 제출한 문서 일부분에서 번역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AFA는 미국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적용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반덤핑 관세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달 초에는 한국산 탄소·합금강 선재에 대해 41.1% 반덤핑 관세가 부과됐다. 미국에 해당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업체는 포스코가 유일하다. 3월 미국으로부터 25% 관세 부과를 면제 받은 후 개별 업체를 겨냥한 반덤핑 관세 발표가 잇따르자 업체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철강업체 관계자 B 씨는 “결국 3월 관세 면제는 한국 기업들을 압박하는 미국 정부의 무기 사용 순서만 달라진 조삼모사식 조치였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통상 압박이 다른 산업으로 번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체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입 자동차에 20% 관세를 매기겠다고 말했다. 한미 FTA에 따라 한국은 적용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 역시 미국이 하기 나름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미 트럼프 정부는 자국 산업을 위해서라면 어떤 조치라도 취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앞으로 수시로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을 늘리려면 한국에서 시설과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자리 감소 등 국내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관세#한미 fta#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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