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구광모 LG전자 상무(40)를 등기이사로 선임하기로 한 것은 선대 회장부터 이어져 온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와병 중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끈 구본준 ㈜LG 부회장은 계열분리 등 별도 경영에 나서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측은 “현재 구 회장이 서울 한 병원에 입원 중이라 앞으로 이사회 내 역할 수행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족 등 주요 주주들이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일원이 이사회에 추가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논의를 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LG의 새 경영체제는 구 상무를 중심으로 LG의 각 주요 계열사를 맡는 부회장 6명 등 전문경영인이 책임경영으로 보완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LG 사내이사 선임을 시작으로 구 상무의 승진, 역할 확대 등이 속도를 낼 것”이라며 “㈜LG를 비롯해 LG그룹 계열사 모두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 체제를 유지하되 구 상무를 그룹 경영 최고 자리에 올려놓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 상무가 경험을 더 쌓을 동안 구 부회장이 LG그룹을 총괄하면서 ‘징검다리’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아들이 없는 구 회장에게 2004년 양자로 입적됐다. LG그룹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에 이어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93)이 70세까지 그룹 경영을 맡았다. 이후 장남인 구 회장에게 경영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한 구 상무는 LG전자 HE사업본부·HA사업본부, ㈜LG 시너지팀 등을 거쳤다. 특히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년 동안 ㈜LG 시너지팀, 경영전략팀 등에서 구 부회장과 하현회 부회장 밑에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G 시너지팀은 LG그룹 각 계열사의 사업 방향 및 연구개발(R&D), 시너지 방안을 총괄하는 부서다. 이곳에서 LG그룹의 지속 성장에 필요한 기술, 시장 흐름에 집중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획하고 계열사 간 협업 방안을 찾는 업무를 맡아왔다.
이때까지 구 상무의 행보는 쉽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올 초 LG전자에서 디스플레이 사업 핵심인 사이니지 사업을 담당하는 ID사업부를 이끌면서 본격적인 대외 행보에 나섰다. 올해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사이니지 전시회 ‘ISE 2018’에 참석해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구 상무는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입학한 뒤 LG에 입사하기 전 시기에 현지 스타트업에서 잠시 일한 적도 있다.
LG그룹 내에서 구 상무는 일하는 방식 면에서 철저한 실행을 중시하는 편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구 상무는 고객과 시장 등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선제적으로 시장을 만들고 앞서가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데 힘을 쏟는다”고 평가했다. 구 상무는 평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야구 관람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자주 보여 왔다.
구 상무는 현재 구 회장(11.28%), 구 부회장(7.72%)에 이어 6.24%를 소유한 ㈜LG 3대 주주다. 구 상무 어머니 김영식 씨의 ㈜LG 지분은 4.20%,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도 ㈜LG 지분 3.45%를 갖고 있다. 이 지분을 상속받으면 구 상무는 ㈜LG 최대주주에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 다만 세금 부담이 크다는 점은 문제다. 증여나 상속 규모가 30억 원 이상일 경우 과세율은 50%에 달한다. 이날 종가 기준 ㈜LG 시가총액은 13조5975억 원으로 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 데만 7000억 원 이상의 상속세를 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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