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고 나면 식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몸속 애틋한 생명체를 보듬으며 고민하게 될 것이다. 혼자 먹지 말고 미생물도 좀 먹이라는 한 남자의 일갈 때문이다.
“흰 쌀밥이나 밀가루는 우리 몸은 살찌우지만 몸속 미생물은 전혀 살찌우지 못합니다. ‘미생물 먹이’도 드세요.”
이 경고를 무시하고 (미생물을 굶긴 채) 혼자만 먹는다면 뒷일은 책임지기 힘들다. 굶주린 미생물이 야수로 돌변해 장 점막을 먹어 댈지도 모르니까.
이 남자는 한국 사람의 대장 내부를 훤히 아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천종식 천랩 대표. 2007년부터 장내 미생물 등 몸을 구성하는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의 전체 DNA(게놈, 유전체)를 연구해 온 미생물 게놈 전문가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이기도 한 그는 2009년 학교 안에 바이오 스타트업 ‘천랩’(당시 사명은 천연구소)을 세우고 미생물 게놈 데이터를 해외 기업과 연구소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업은 꽤 잘됐다. 천랩은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 건물 한 층을 통으로 쓰는, 생명과학 연구원을 포함한 67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중견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학문적으로도 성과를 인정받아 그가 구축한 미생물 데이터베이스는 톰슨로이터의 논문 인용색인 사이트 ‘웹오브사이언스’에서 2017년도 미생물 분야 인용 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가 미생물 박애주의자라서 미생물 먹이를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미생물을 잘 먹여야 그 미생물을 품고 사는 사람도 건강하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동식물이 생태계를 이룬 아프리카 초원처럼, 모든 사람의 몸은 각기 자신만의 미생물 생태계를 품고 있습니다.”
70억 인류 누구도 장 속 생태계는 똑같지 않다. 사람의 장에서 발견되는 미생물은 대개 500종 내외인데, 어느 종이 어느 비율로 있는지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하지만 연구가 덜 돼 있어 아직 한국인 장내 미생물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천 대표는 자신의 장내 미생물 분석 데이터를 연구용으로 공개했는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위 10개 종 가운데 절반(5종)이 아직 분리, 배양조차 못할 만큼 연구가 안 돼 있다.
그는 최근 성인 2000명의 똥을 수집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똥 시료를 제공해주면 무료로 장내 미생물 정보 컨설팅을 해준다. 온라인으로 신청한 뒤 천랩에서 제공하는 키트로 똥을 채집해 보내고 식습관 개선 프로젝트를 2주간 시행하면 된다. 마지막에 다시 똥 시료를 보내면, 2주 사이에 변한 자신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재미로 벌인 일이지만, 목적이 없지는 않다. 올 하반기에 병원과 함께 건강검진용 미생물 분석 프로그램으로 개발해 미생물 분석 및 식습관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시민과학은 이 서비스의 체험 프로그램인 동시에, 한국인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확보하고 서비스의 타당성도 타진해 보는 재미있고 영리한 기획이다.
마지막으로 천 교수에게 미생물을 살찌우는 ‘먹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곡물이나 과일의 껍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미, 귀리, 아몬드같이 껍질이 있는 곡식이나 견과류가 좋단다. 사과 껍질 속 펙틴도 미생물이 열광하는 먹이다.
“물론 모두 장내 미생물이 다르기에 똑같이 통하지는 않습니다. 그 유명한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 등 이로운 미생물)도 사람마다 효과가 달라요.”
그러니까 요구르트를 아무리 먹어도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용없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먹어온 요구르트가 정말 효용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면 지금 천랩에 똥 시료를 보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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