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 추진을 연기하면서 어떤 개편안을 새로 내놓을지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21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수렴해 사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개편안을 보완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편안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재벌 개혁 요구와 시장이 원하는 방향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현대차그룹 수뇌부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재계와 투자업계 안팎에서는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낸 의견을 우선 고려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현대모비스 2대 주주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공단의 공식 의결권 자문사다. 기업지배구조원마저 개편안 반대를 권고한 게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 추진을 잠정 중단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찬반 의견을 논의할 때 현대차그룹이 내건 순환출자 해소라는 목표는 옳다고 봤지만 계열사 분할과 합병에 따른 효과에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개편안의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현대모비스와 글로벌 분할·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구체적 근거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조 원장은 “당장 시너지 효과가 불명확하다고 하면, 현대글로비스 대주주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주식을 팔아서 모비스 주식을 사들이는 식으로 우선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나중에 분할해도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모비스 분할을 기본으로 하는 개편안 골격을 유지한다면 분할 비율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분할 비율은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 등이 제기했던 문제다. 모비스 주주 등 국내 투자자 일부도 불만을 나타냈다. 핵심은 분할 부문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이다. 모비스 분할 부문과 합쳐질 글로비스 지분을 팔아서 존속모비스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 정 회장, 정 부회장에게 유리한 방법이라는 시장의 의심은 불식되지 않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분할 비율을 계산하는 여러 방법이 있고 현대차그룹이 택한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니다”면서도 “개편안을 재추진할 때 지지를 얻으려면 오너 일가가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모비스 분할 부문의 가치를 상향하는 식으로 수정할 경우 기존 글로비스 주주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분할·합병 비율에 대한 논란을 없애려면 분할 부문을 상장시켜 시장의 평가를 받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신경제연구소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이 권고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장 준비에만 1년 넘게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재계 관계자는 “애초에 현대차그룹이 최종적으로 개편안을 확정할 당시 정부가 요구한 ‘실행 시간표’가 제약이었을 수 있다. 정부 요구를 반영한 개편안에 대한 시장의 반대를 확인한 만큼, 정부가 시간적 여유를 준다면 고려할 만한 방법”이라고 했다.
지주사 설립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지주회사 전환은 지주사가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는 현행법 체계 내에서는 현대캐피탈 등을 처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자동차 판매가 핵심인 기업에 자동차 구매 할부 상품 등을 취급하는 금융 계열사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결국 금산분리 완화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허용 등 제도 변경이 필요하다. 정부 및 정치권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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