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Her·국내 개봉 2014년)’에는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나온다. 아내와 별거 중인 테오도르는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말도 잘 통하는 AI 비서 사만다에게 위안을 얻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아마존 알렉사, 삼성 빅스비, 애플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현재의 AI 비서들은 빅데이터 분석으로 고객과 맞춤형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AI에 본인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감성 대화’도 늘고 있다. 사람만큼 말이 잘 통하는 AI와 우정이나 사랑을 나누는 일이 가능할까.
동아일보와 KT가 이달 5∼9일 20, 30대 1971명을 대상으로 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최신 정보기술(IT) 수용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아직 가상과 현실을 서로 구분된 이질적인 세계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IT가 산업뿐 아니라 미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고 싶어 신기술 수용력이 높은 청년층의 이해도를 엿보기 위해 실시됐다.
설문 결과 테오도르처럼 AI와 사랑에 빠지게 될 가능성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AI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대답은 27%였지만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응답은 8%에 불과했다. 남성은 AI와 사랑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20∼24세 연령대에서 14%에 이르는 등 평균 10%였지만 여성은 7%에 그쳤다.
가상 세계를 그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3월 개봉) 역시 2018년 현실 세계에 대입했을 때 상황이 달라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에서 현실보다 더 리얼한 가상공간 ‘오아시스’를 그려냈다. 2045년 미국 빈민촌 주민들은 방 안에서 VR에 푹 빠져 춤추고, 쇼핑하고, 데이트한다. 가상세계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현실에서 노예가 되기도 한다.
설문에 따르면 가상공간의 자동차나 집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는 각각 32%, 36%에 그쳤다. 가상세계에서 재화를 구입할 때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은 월급의 10%를 넘기지 않겠다는 응답(70%)이 가장 많았다. 금액 기준으로는 10만 원 미만(62%)이 10만∼50만 원 미만(18%), 50만∼100만 원 미만(10%), 100만 원 이상(9%)보다 월등히 높았다.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다른 성별을 택하겠다는 응답은 4명 중 1명에 달했다. 대부분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AI, AR, VR 등 세 가지 기술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4%(81명)에 불과했다. AR(41%) 및 AR와 VR 차이(42%)에 대한 인지도는 절반도 안 됐다.
IT업계는 아직 가상세계에 대한 감수성이 무르익지 않았지만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 ‘영화와 같은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세계의 도래는 실제 지도보다 정교한 초정밀지도(HD맵)와 헤드셋을 썼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초고화질 영상(8K), 초고속 초대용량 파일 전송 인프라(5G), 엄청난 수의 사물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massive IoT), 사람의 표정과 음성만으로 감정을 파악하는 고성능 AI 등의 상용화 여부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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