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회사는 아니지만 지난 6년 동안 한 명도 이직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었어요. 그런데 대비할 틈도 없이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비용이 늘게 생겼고 기업 규제는 심해집니다. 감원 얘기가 나올까 겁이 납니다.”
인천 남동구 남동국가산업단지에 있는 ‘보원기계’ 최두영 전무는 근로시간 단축 등 정부 정책 얘기가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체감 경기는 바닥인데 기업을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정책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 눈앞에 닥친 근로시간 단축 위기
29일 오후에 찾은 보원기계 공장. 660m² 크기의 내부에는 압축공기를 별도로 저장하는 설비인 압력용기 3개만 덩그러니 있었다. 주로 대형 건설사에 납품하는 이 설비는 건설 경기가 악화하면서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최 전무는 “이대로 가다간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20∼30%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3월 건설업생산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8.4%가 떨어지는 등 하락세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생산 부진도 걱정이지만 회사의 진짜 걱정은 따로 있었다. 52시간 근로시간 단축과 인건비 상승이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쳐서다. 직원이 21명인 중소기업이어서 근로시간 단축까지 유예기간이 많지 않을까.
최 전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그는 “대형 건설사에서 하청을 받아 현장에 가서 설비를 설치하면 파견된 회사 직원들은 300인 이상 사업장의 기준을 적용받는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당장 7월 1일부터 적용돼 이 회사도 법정 시간을 준수해야 하고 그만큼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납품기일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인건비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호석 성지기공 대표는 “생산계획을 미리 짜서 공장을 돌리는 큰 회사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할 여지가 있지만 주문에 따라 생산하는 작은 기업들은 일이 몰리는 시기를 조절할 수 없어 정책에 대응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 ‘공장 문 닫을까’ 고민
현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경기는 부침이 있기 마련이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불황으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동공단에서 10년 넘게 금속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공장을 접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직원 12명의 인건비가 한 달 평균 350만 원씩 더 들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납품단가는 그대로인데 인건비는 계속 늘고 ‘최저임금도 못 주는 회사는 망해야 한다’는 세간의 시선에도 이제는 지쳤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3000개 중소기업을 상대로 ‘경영상 애로사항’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7.5%가 인건비 상승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공단에선 폐업이 늘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공장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동공단의 2월 가동률은 61.6%로 지난해 2월(66.9%)보다 5.3%포인트 하락했다. 설 연휴를 감안해도 가동률이 60%대 초반으로 떨어진 건 이례적이다. 지난해 설 연휴가 있었던 1월 남동공단의 공장 가동률은 70.6%였다. 특히 50인 미만 기업의 가동률은 54.2%로 경기 상황과 정부 정책에 영세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은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뚜렷한 타개책이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 현장의 애로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무리한 정책도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보다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며 “하반기에 우려가 현실화하면 중소기업 경기가 더욱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제조업 분야의 고용과 성장이 부진에 빠지면서 제조업 내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규제 장벽을 철폐하고, 정부 정책을 현실에 맞게 유연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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