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하위층 소득감소 매우 아픈 지점”… 정책 기조는 유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소득주도성장 논란]靑, 가계소득동향 긴급 점검회의

머리 맞댄 靑-경제부처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을 비롯한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머리 맞댄 靑-경제부처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을 비롯한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가 근로자의 임금을 높여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소득계층 간 양극화가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 만큼 보완책을 마련하되 경제정책의 핵심 틀은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통해 “거시 경제 상황이 개선됐지만 최근 하위 20%의 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 분배가 악화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가계소득동향을 점검하기 위해 별도의 회의를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의는 최근 일자리 증가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고 저소득 가구와 고소득 가구의 소득 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는 통계 지표가 잇달아 발표되자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검점하기 위해 마련됐다.

○ “소득주도성장 기조 유지”

이날 회의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한 원인으로 고령화, 최저임금 인상, 자영업 부진, 건설경기 부진 등을 지목했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이고 그 여파로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었다는 경제계의 지적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당국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2시간 30여 분간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만 구체적인 대안은 밝히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과 관련 부처 장관들이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를 계속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날 회의 결과를 보면 저소득층을 위한 보완책은 내놓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큰 틀은 바꾸지 않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한 셈이다. 정책의 효과를 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궤도를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단기 성과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자리 정책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가 국민 실생활에 구현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저소득층 위한 근로장려세제, 기초연금 확대 거론

소득 하위 20%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는 방안으로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기초연금 추가 인상,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확대 등이 거론된다. 이 대책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추진할 수 있고 효과도 빠르게 나타나며 최저임금 연착륙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정부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EITC란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근로소득에 따라 근로 장려금을 지급하는 근로연계형 소득 지원 제도다. 정부 내에서도 이 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저소득층 소득을 높이려면 결국 정부 재정이 필요한데 이미 추경(추가경정예산안) 카드를 썼기 때문에 EITC 지원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기초연금은 올해 9월부터 현행 20만6000원에서 25만 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다만 노인 빈곤율과 전체 노인 인구의 39%에 불과한 국민연금 수급자 현황 등을 고려하면 추가 인상을 고려할 여지가 있다.

고령층을 위한 일자리 확대 지원처럼 고령층, 무직자 등 저소득층 가구 특성에 따른 맞춤형 방안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 “궤도 맞는지 큰 틀에서 점검해야”

당초 정부가 주장한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부문 주도의 일자리 확대 등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면 이들이 소비를 늘려 기업 투자도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실험은 결국 소득 위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고용을 줄이고 일자리 정책이 공공부문에 치우치는 바람에 민간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퇴보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런데도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기조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면서 미시적인 보완책만 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더 늦기 전에 정책 방향 자체가 맞는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정밀하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려면 기업 투자부터 늘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투자 의욕이 꺾인 상태에서는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기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 / 황태호·한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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