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빠르게 성장하던 바이오산업이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오업체들이 회계 처리 논란과 각종 규제로 위축되면서 바이오산업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처럼 새로 성장하는 산업은 기존의 잣대가 아니라 새로운 잣대로 규제를 풀어가며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사업에 뛰어들려는 기업들이 한국보다 규제가 약하고 시장이 큰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바이오업체는 속 빈 강정?”
“요즘 정부의 조치를 보면 우리를 마치 사기꾼 집단으로 여기는 느낌입니다. 실체가 없으면서 실적과 주가만 뻥튀기하려는…. 이쪽 업계 종사자들의 사기가 말도 못하게 떨어져 있어요.” 30일 한 중견 바이오업체 직원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금융당국은 바이오기업이 연구개발(R&D)비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과도하게 책정해 영업이익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4월부터 셀트리온과 차바이오텍 등 10곳에 대해 회계감리를 진행 중이다.
시작은 1월에 발표된 도이치뱅크의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셀트리온의 실적을 놓고 “2016년 영업이익률은 57%인데 R&D 비용을 감안하면 30% 중반으로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바이오기업들에 대한 특별감리를 예고했고 일부 기업은 회계 처리를 부랴부랴 변경했다. 하지만 차바이오텍은 R&D 비용을 여전히 자산으로 책정했다가 3월 감사보고서에서 회계법인으로부터 비용으로 처리하라며 ‘한정’의견을 받았다. 자산이 비용으로 바뀌자 차바이오텍 실적은 적자로 전환됐고 이 회사 주가는 급락했다. 한국거래소로부터 관리 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바이오업계는 “비용 처리 문제는 바이오업계 전반에 해당하는 일로 업계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국제기준에 맞도록 회계 처리를 해야 하지만 업종 특성상 매출과 이익이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R&D 활동 자체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주가로 연결되는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황만순 신산업투자기구협의회장은 “미국 등 해외 바이오기업들도 회계법인과 논의해 자산화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업계는 회계 처리 논란이 순조롭게 해결되지 못하면 한국의 바이오산업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31일 열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3차 감리위원회의 결론에 대해 업계가 비상한 관심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감리위가 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좋은 결정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규제에 발목 잡힌 K바이오
바이오기업들의 성장을 억누르고 있는 규제는 곳곳에 있어 스타트업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침과 혈액 등으로 편리하게 유전자 분석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쓰리빌리언’ ‘제노플랜’ 등도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한국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질병 검사 항목이 혈압, 혈당 등 12개로 제한돼 있다. 업계는 이를 암, 아토피, 중증질환 등으로 확대해야 소비자들의 혜택이 늘어나고 관련 기업들도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경우 유방암 등 중증질환까지 유전자 분석의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의 성과를 확인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한 신성장 산업을 통한 미래가치 창출과 일자리 증가는 요원한 일로 보고 있다. 선경 고려대 의대 교수는 “한국의 바이오헬스 분야의 잠재력은 폭발적인 힘을 가진 ‘로켓엔진’ 같아 규제만 완화되면 미래가 매우 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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