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조작 파문 확산에도 “전수조사 안한다” 뒷짐 진 금감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8일 11시 37분


금융당국 부실 대처 도마에

은행권 대출금리 조작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금융당국의 부실한 대처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모든 은행을 전수조사해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자체 조사’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또 부당하게 금리를 매긴 은행이 어디인지, 소비자는 피해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어 금융소비자 보호를 우선해야 할 금감원이 대출소비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소비자·정치권도 “전수조사하라”지만 금감원은 “계획 없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1만2000건의 가계대출 금리를 부풀려 매긴 BNK경남은행은 전체 점포(165곳) 중 100개 안팎의 점포에서 이 같은 문제가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경남, KEB하나, 한국씨티은행이 더 받은 이자 총 26억6900만 원을 환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은행권 대출금리 산정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은행들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하지만 범죄나 다름없다. 금융당국은 전수조사를 통해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여전히 전수조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 대신에 광주, 전북, 제주. 대구은행 등 4개 지방은행과 수협은행을 대상으로 2013년 이후 대출에 대해 자체 점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를 하지 않은 은행도 상시감시 차원의 모니터링에서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며 “자체 점검 결과 문제가 있으면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은행권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자체 점검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 때도 은행들은 자체 점검 결과 비리가 전혀 없다고 보고한 바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은행권 전반의 잘못된 관행과 허술한 시스템이 문제일 수 있는데, 이를 확인하려면 최소한 모든 은행의 금리 산정 체계를 금융당국이 직접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적발 은행, 규모 공개 안 해 혼란 더 키워”

금융당국의 안일한 인식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오승원 금감원 부원장보는 21일 9개 은행의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적발 사례는 극히 일부다. 대부분 영업점은 모범적으로 금리를 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날인 22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 개별창구에서 일어난 일이다. 기관 차원의 징계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며 선을 긋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사태를 축소하기에 급급하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또 금감원이 경남, 하나, 씨티은행 외에 대출금리 부당 산정 사례가 적발된 다른 7개 은행의 이름은 물론이고 이자 환급 계획도 밝히지 않아 소비자 혼란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은행은 경기 상황이 변하면 재산정해야 할 가산금리 항목(신용프리미엄)을 수년째 바꾸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우대금리를 축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출자 김모 씨는 “내가 대출받은 은행이 해당되는지 금감원에 물었더니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며 “금감원이 소비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기본적으로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산정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해서 무조건 이름을 밝히고 이자를 환급하라고 할 수 없다. 제도 개선으로 이를 바로잡겠다”고 해명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다른 은행들의 적발 사례도 소비자 입장에서 피해를 본 건 마찬가지”라며 “금감원은 피해 규모와 사례들을 정확히 밝히고 소비자 구제 방안부터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태호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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