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된 협상’ 믿었는데… 수출절벽 내몰린 한국 철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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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제품 53개중 13개, 對美 수출쿼터 이미 80% 이상 소진


‘대미(對美) 철강수출 중단’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5월 미국과의 철강무역 협상에서 ‘수출량 70% 제한조치’를 받은 것을 ‘성과’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철강업계는 벌써 ‘수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일부 철강기업은 당장 이달부터 미국행 선박에 제품을 실을 수 없어 공장 가동률까지 낮추기 시작했다. 수출 쿼터(할당량)를 둘러싼 업체들 간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2일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한국철강협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수출 철강제품 53개 중 13개(25%)는 이미 80% 이상 쿼터를 소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연봉강, 전기강판, 파일링 파이프 등 7개는 쿼터가 모두 소진됐고, STS(스테인리스스틸) 반제품, 유정용강판(OCTG), 기계구조용강관, 송유관 기타, 일반강관, STS 냉연강판은 80%를 넘어섰다. 아직 올해가 절반이나 남았는데 수출 가능한 물량이 거의 바닥나 버린 것이다.

특히 국내 수요가 거의 없고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강관(금속 파이프)류 제품들의 피해가 컸다. 미국은 석유시추, 신재생에너지 등 분야에서 강관 수요가 높아 한국의 중견 철강사들은 미국 수출에 의존해 성장해 왔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제품군별 소진율은 강관(81%), 스테인리스(71%), 봉형강류(55%), 판재류(33%), 반(半)제품(0%) 순으로 높았다.

이는 지난달 17일 미국 통관이 끝난 기준으로 작성된 수치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배편으로 철강제품을 보내고 통관을 마치는 데에는 통상 2, 3개월이 걸린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2, 3개월 전 수치라는 뜻이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통관기준 70∼80%에 해당하는 제품들은 이미 수출이 다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 중단 여파는 국내 철강사들을 차례로 강타하고 있다. 휴스틸은 이미 지난달부터 미국행 선박에 강관을 싣지 못하고 있다. 내년 치 수출이 재개되는 10월경까지는 미국 수출이 ‘제로’인 셈이다. 5월까지 정상적으로 돌아가던 생산공장 가동률도 지난달부터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아제강도 주력 품목인 유정용강관의 수출길이 이미 막혔다. 세아제강 관계자는 “포항공장 가동률도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제철은 연간 20만 t 규모의 강관을 미국으로 수출하는데 이미 올해 수출이 다 끝났다. 관세 부담까지 안고 있던 포스코는 ‘도저히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최근 수출쿼터를 포기하고 이를 현대제철에 넘겼다.

쿼터를 둘러싼 한국 기업들 간에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업체들 간의 쿼터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일부 업체들이 이미 상반기(1∼6월)에 ‘밀어내기’ 식으로 대미 수출물량을 대폭 늘린 것.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밀어내기를 못 한 나머지 업체들이 ‘쿼터 협상에서 피해를 봤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철강업체들 사이에서는 “애초 정부의 대미협상이 잘못됐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홍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 의원은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수출쿼터가 조기 소진됐고 철강사들이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것은 정부의 협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수출#철강#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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