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간) 미국이 발표한 관세품목 리스트에 중국산 타이어가 포함되자 국내 타이어 기업들은 오히려 기대감을 보였다. 미국에서 팔리는 한국산, 중국산 타이어는 가격차가 크진 않지만 중국산이 좀 더 저렴하다. 미국 소비자 특성상 고급이나 고(高)사양 타이어보다는 ‘싸고 오래가는’ 타이어를 선호하기 때문에 중국산이 인기를 끌었다. 한 타이어 기업 고위 임원은 “중국 타이어에 10%의 추가 관세가 붙는다면 한국산과 중국산의 가격이 역전될 여지도 있다.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 속에서도 웃고 있는 산업군이 있다. 특히 경쟁력 높은 완제품은 관세전쟁 폭탄을 온전히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디스플레이, 전화 부품…관세전쟁 수혜 품목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1월 내놓은 ‘미국의 신정부 통상전략’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 중 가장 경쟁이 심한 품목은 전화기 및 관련 부품, 텔레비전, 프로젝터, 모니터, 전기전자 제품, 알루미늄 제품 등이다. 얼마나 경쟁하고 있느냐에 따라 수출 경합도를 0∼1로 수치화할 때 이들 품목의 경합도는 0.5∼0.7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이런 품목에 해당하는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산은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 제품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실제로 관세 부과가 예고된 2000억 달러어치의 품목 중에는 디스플레이, 전화 부품 등 전자기기 부품 및 완성품 300여 개가 포함돼 있다. 2000억 달러는 중국의 지난해 대미(對美) 수출액(4318억 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반대로 중국이 미국에 부과한 보복관세 덕분에 한국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쉬워질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석유화학기업이다. 중국이 예고한 대로 미국산 석유화학 제품에 보복관세를 물리면 중국 내 미국산 에틸렌의 가격이 오른다. 이는 에틸렌을 원재료로 쓰는 수많은 중국 업체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
○ 완제품으로 중국 내수시장 공략
중국산 제품에 들어가는 한국산 중간재는 지금과 같은 무역 분쟁이 터지면 수출물량이 매우 불안정해진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품목 중 78%가 중간재인데 이 비중을 줄이고 중국 내수용 완제품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완제품은 상대적으로 꾸준한 수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예로 LG생활건강은 지난해와 올 초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도 불구하고 1분기(1∼3월) 역대 최고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주로 화장품, 생활용품 등 중국 소비자들이 직접 구입하는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판매 호조를 유지했다. 국가 간 감정싸움이나 무역 갈등도 경쟁력 높은 완제품 판매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기회가 될 여지도 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수록 중국은 개방 속도를 높이고 선진국은 자국에서 중국으로 신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강하게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기회가 늘 뿐 아니라 기술력에서 중국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실제 중국은 최근 개방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은 8일 중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나 중국 증시 상장 기업의 해외 법인에서 일하는 외국인도 중국의 내국인 전용 주식인 A주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증시를 개방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산업연구부장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내수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방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기업들이 이 점을 기회로 삼아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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