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 한식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시기, CJ제일제당의 승부수는 다름 아닌 비비고 브랜드의 만두 제품이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들도 김치, 비빔밥 등 누가 봐도 대표 한식 메뉴로 꼽을 수 있는 식품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했던 때다. 한식의 정체성이 약한 만두로 세계 시장을 노린다는 발상은 다소 생소했다. 게다가 첫 타깃 시장은 미국이었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고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동남아시아나 중국 대신 미국을 노렸다.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1위 식품회사를 꿈꾸던 CJ제일제당은 자신들의 선택을 과감히 밀어붙였다. CJ제일제당은 한식의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외국인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음식부터 공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밀가루 피로 채소와 고기 등을 감싸 찌거나 튀기는 음식은 세계 어딜 가도 있다는 점에서 만두에 대한 외국 고객의 거부감이 작을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에서 냉동식품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나라다. 미국에서 성공해야 CJ의 ‘비비고’ 브랜드를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CJ제일제당은 미국 진출 10여 년 만인 2016년 매출 1080억 원을 기록하며 현지 만두시장 1위 자리에 올라섰다. 미국에서 쌓은 노하우는 중국, 베트남, 러시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원동력이 됐다. 여세를 몰아 2020년까지 만두로 글로벌 매출 1조 원을 돌파할 계획이다. 경영 전문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52호에 실린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의 글로벌 전략’을 정리해 소개한다.
○ 현지 기업 인수로 필요한 자원 확보 CJ제일제당은 현지 업체 인수합병(M&A)을 통해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려 했다. M&A를 하면 인수 대상 기업의 생산설비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유통망까지 빠르게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2007년 한국계 미국인이 운영하던 옴니푸드(Omni Food)를 인수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의 주요 대형마트에 냉동 만두를 납품하던 업체다. 지역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았으며 하루 25만 개의 만두 생산이 가능한 업체였다. 옴니푸드를 통해 CJ제일제당은 미국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다.
미국 시장에 안착한 후 베트남, 러시아 등에 새로 진출할 때에도 현지 만두 제조업체 인수를 통해 시장에 자리잡았다. 2016년 베트남에선 베트남식 만두인 ‘짜조’ 판매 1위 업체인 까우쩨(Cautre)를 약 170억 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러시아에서도 러시아식 만두인 ‘펠메니’의 주요 생산업체인 라비올로(Raviollo)를 300억 원에 인수했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업체 인수 작업을 진행할 때 M&A 전문가뿐만 아니라 만두 제품 전문가들을 투입했다. 통상 기업 인수 작업은 재무 회계 및 법률 전문가들이 주도한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만두 생산 전문가들이 참여해 인수 대상 업체의 브랜드 인지도, 유통망, 생산설비 수준 등 비재무적 요소를 면밀히 검토했다. 이를 통해 CJ가 보유한 만두 관련 기술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업체를 효과적으로 선별했다.
○ 맛 현지화를 위한 노력
고객의 혀끝을 사로잡기 위한 맛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CJ제일제당은 현지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에선 건강을 챙기는 소비자가 많다는 특성을 감안해 만두소에 닭고기를 썼다. 아시아의 맛을 원하는 소비자 성향을 고려해 고수도 넣었다. 반면에 중국 소비자들은 부추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부추 대신 배추와 옥수수를 넣은 제품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비비고 만두에는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가 많이 들어간다. 쇠고기의 맛과 향을 좋아하는 러시아인의 입맛에 맞춘 결과다.
맛 현지화의 중심에는 CJ의 ‘글로벌 식품 R&D센터’가 있다. 센터 직원 총 23명 가운데 9명이 중국, 베트남, 미국 등 세계 각지에 파견돼 있다. 이들은 시장조사 등을 통해 현지인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내고 있다.
○ 핵심 경쟁력은 해외로 전파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브랜드가 지닌 강점과 정체성을 현지 법인에 녹여내기 위한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비비고 만두 생산 공정을 표준화해 세계 어디에서도 같은 품질의 만두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례로 CJ는 광학선별 기술과 칼로 고기를 다지는 공법을 모든 현지법인이 활용하도록 했다. 식재료 처리 과정에서 광학센서 기술을 활용하면 오염 물질을 보다 정확하게 걸러내 식품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고기를 칼로 다지는 공법을 활용해 보다 식감이 좋은 만두소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CJ제일제당 인천 공장 직원들이 직접 해외 현지 공장으로 파견돼 생산 공정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식 마케팅 방법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CJ제일제당은 2011년 홍콩 유통회사 DCH와 합작 법인을 세우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수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통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데다 중국 만두에 이미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기를 타파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시식 코너를 담당하는 CJ엠디원 ‘아줌마’ 직원들이었다. 중국 마트에 급파된 이들은 특유의 적극성과 친절함을 무기로 현지 마트에서 시식활동을 주도했다. 이색적인 광경에 관심을 보인 현지 소비자들이 하나둘 비비고 만두를 맛보더니 장바구니에 한 봉지씩 담기 시작했다. 소극적이었던 중국법인 현지 인력들도 이 상황을 지켜본 후 시식 영업을 적극 펼쳐 판매량을 늘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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