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환자들을 위한 첨단 의료기기 수입을 가로막는 규제 사례를 듣고 이같이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과 의료 관련 공공기관장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불합리한 의료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나선 규제혁신 현장방문이다. 집권 2기를 맞아 규제혁신을 통한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문 대통령이 첫 행보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의료기기 분야를 택한 것을 두고 틀을 깨는 과감한 규제개혁을 공직사회에 주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 규제혁신 신호탄 쏜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첨단기술을 개발하고도 제품 출시가 좌절된 기업들의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규제혁신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기기 산업은 혁신적인 제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제때 신속하게 출시될 수 없는 구조”라며 “유방암 수술 후 상태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도 국내에 임상문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허가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이런 일은 없어질 것”이라며 “저는 오늘 규제혁신 첫 번째 현장으로 찾은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의료기기 규제혁신에 대해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규제혁신 방안으로 문 대통령은 안전성 우려가 작은 체외 진단기기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을 허용하되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통상 390일이 걸리는 체외 진단기기 심사 기간도 80일 이내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바이오벤처기업들이 당뇨병 등을 편리하게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도 장기간 심사에 발목이 묶여 자금난에 허덕이는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또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팅, 로봇 등을 이용해 의료진을 도와주는 기기는 최소한의 안정성만 확보하면 별도의 심사 없이 바로 의료 현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매년 5%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다른 제조업에 비해 더 크다”며 “우리 의료기기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뚝 서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규제혁신에도 일자리 우선순위
문 대통령이 첫 규제혁신 현장방문으로 의료기기 분야를 선택한 것은 체감 효과가 크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서 우선 규제혁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7일 ‘성과 미흡’을 이유로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당일 취소한 문 대통령이 이번 현장방문으로 문재인 정부 규제혁신 방향을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기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규제 기요틴(단두대)’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 역시 규제개혁 장관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의료기기 규제개혁 방안을 내놨지만 정치권과 관련 단체들의 반대로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통령사회정책비서관실과 복지부는 이번 규제혁신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단체들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기가 중소벤처기업 육성이라는 혁신성장 기조와 맞아떨어지는 분야라는 점도 고려됐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중소벤처기업들이 활약할 수 있는 첨단 산업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규제혁신이 가시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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