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제8차 전력수급계획으로 탈원전 정책이 확정된 후 비가역적 탈원전화가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반핵 환경운동가들을 원자력 관련기관 임원으로 임명해 사업을 통제하고 예산을 삭감해 미래 원자력 연구를 차단하고 있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결정한 신규원전 부지 해제 조치는 비가역적 탈원전화의 핵심조치다. 정부고시를 통해 6 년전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에 지정됐던 원전 예정부지가 7월 말 해제된다면 나중에 원전을 다시 건설하려고 해도 주민 불신으로 해당 지역에는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년간 탈원전 정책의 변경을 고려할 요인과 사례가 여럿 생겼다. 먼저 후쿠시마 사고를 겪었던 일본에서 강화된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원전 9기를 가동시켰다. 일본이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이유는 원자력을 대체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증가로 무역적자, 전기요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액 증가는 지난해 한국에서도 관측됐다. 2015년까지 에너지 수입액은 5년 평균 연 1625억 달러로 전체 수입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규모였다. 2015년부터 유가가 급락하자 2016년 에너지 수입액은 과거 절반 수준인 809억 달러로 줄고 덕분에 무역흑자가 대폭 늘었다. 그런데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은 1095억 달러로 전년보다 35%나 증가했다. 올해 유가는 더 오르고 있다. 지난해 확정된 탈원전 정책은 유가와 LNG 가격이 최저를 기록했던 2016년자료와 전망을 바탕으로 입안되었으나 1년 만에 국제 에너지 환경은 급변했다. 원자력 대신 LNG 발전을 늘리면 수백억 달러 규모의 무역적자 요인이 발생한다. 반면 원전수출이 성사되면 무역흑자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5개국 회사 모두를 원전 2기 건설의 예비사업자로서 선정해 한국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회사와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에 따라 국내에서는 더 이상 신규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하고 확정 부지까지 해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치열한 수주전에서 크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성공적 원전수출을 위해서는 제한적이나마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해 원전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난달 한국갤럽이 발표한 원자력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는 원전 비중의 유지 또는 확대 의견이 축소 보다 54 대 32로 우세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44 대 39에 비해 차이가 17 %p 나 커진 것이다. 이는 원전 가동률 저하로 인해 지난 겨울에 나타났던 빈번한 수요감축 지시와 한전의 2분기 연속 적자, 석탄 발전량 증가로 인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과다배출 등 탈원전 부작용이 빠르고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자력 회복과 확장 선언에 따라 소형원전 개발에 투자하며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최근 원전의 가동기간을 60년을 넘겨 80년까지 가동하기 위한 연구 프로그램에 정부예산 배정을 확정했다. 원전을 60년 이상 가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원전이 충분히 안전하고 건전하게 관리가 가능한 발전수단임을 방증한다.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와 상생하며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고, 무역수지 개선과 국가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원자력의 효익은 신고리 5,6 호기 공론화 과정과 1년의 탈원전 이행과정에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의 원자력 인식은 아직 탈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꿀 정도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장래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차단하는 비가역적 탈원전화가 계속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국제에너지 환경 변화, 재생에너지 개발 추이, 북한의 비핵화 이행 과정 등을 지켜보며 원자력이 미래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특별히 이미 매입이 시작된 신규원전부지의 지정해제 조치는 철회되는 게 마땅하다. 그 부지는 당분간 재생에너지 발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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