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즉시연금’ 가입자에게 연금 일부를 덜 지급했다는 논란을 둘러싸고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업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금감원은 ‘일괄 구제’ 원칙을 앞세워 “계약보다 적게 지급한 보험금을 모든 가입자에게 돌려주라”며 압박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민원 1건에 대한 결정을 전체 계약으로 확대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즉시연금 이슈가 과거 ‘자살 보험금’ 사태처럼 장기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 금감원 “약관 불분명, 미지급금 돌려줘야”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즉시연금 가입자는 최대 16만 명이며 금감원의 방침대로 일괄 구제가 적용되면 보험사들이 돌려줘야 할 보험금은 약 1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300억 원가량의 부담을 안고 있는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전체 가입자에게 연금을 돌려줄지를 결정한다.
논란이 된 즉시연금은 일정 금액 이상의 목돈을 맡기면 다음 달부터 매달 연금을 받고 만기 때 원금까지 돌려받는 만기환급형 상품. 이번 사태는 지난해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A 씨가 “연금 수령액이 계약보다 적다”며 금감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A 씨는 2012년 만기 10년 상품에 10억 원을 가입했다. 약관의 최저보증이율은 2.5%였다. A 씨는 매달 208만 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중금리가 하락하면서 나중에 130만 원 정도를 받았다. 이는 보험상품의 특징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즉시연금은 보험료가 1억 원일 경우 500만 원가량을 사업비, 위험보험료 등으로 공제한 뒤 순보험료를 운용해 매달 연금을 지급한다. 이때도 만기 환급금 1억 원을 충당하기 위해 ‘보험금 지급 재원’을 제외한다.
문제는 약관에 이런 내용이 명확하게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약관은 “연금계약 적립액은 보험료,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다”고 돼 있다. 이에 분쟁조정위는 “산출방법서는 보험사 내부 서류일 뿐 약관만으로 가입자가 연금액이 최저보증이율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며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 보험사 “일괄 구제 강제할 근거 없어”
보험업계는 금감원이 직접 승인한 약관을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A 씨 등 일부 계약자에 대한 분조위 조정 결과를 전체 가입자로 확대해 일괄 구제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생보사 고위 관계자는 “도입이 확정되지 않은 제도를 즉시연금부터 적용하는 것은 ‘보험사 군기잡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분조위는 재심 등 보험사의 방어장치가 부족하다. 이렇게 결정된 조정안을 전체 계약에 확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소송전으로 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생명은 “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일괄 지급해야 할 근거는 없다”는 법률 조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일괄 구제를 거부한 보험사를 대상으로 과징금 부과 등 행정조치를 취할 경우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보험사가 분조위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금감원에 대해) 소송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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