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가는 성장엔진… 임금 3.6% 오를때 서비스업 생산성 ―0.3%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6일 03시 00분


[위기의 한국경제]노동생산성 OECD 국가중 22위
임금은 오르는데… 노동생산성 年평균 0.1% 증가 그쳐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인건비는 크게 오르면서 고임금-저효율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대내외 악재로 뒤덮인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제자리걸음을 한 반면 인건비는 크게 오르면서 고임금-저효율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대내외 악재로 뒤덮인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의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0.1%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6∼7%씩 향상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생산성이 정체된 것에 비해 임금 수준은 크게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은 경쟁력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조건 개선에 치우친 채 생산성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루고 있다. 무한 경쟁의 시대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이 노동계의 요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코 노쇼비체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은 현대차 해외 공장 가운데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자리를 비우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2009년 공장 준공 이후 한 차례도 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다.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HPV)은 지난해 기준 13.9시간에 불과하다.

반면 현대차 국내 공장의 HPV는 26.8시간으로 만 하루를 훌쩍 넘는다. 도요타(24.1시간), GM(23.4시간), 포드(21.3시간) 등 주요 경쟁사보다 길다. 자동차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성장의 핵심인 노동생산성이 전 산업에 걸쳐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 식어가는 엔진…뒤처지는 노동생산성

25일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한 전체 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 지수는 2008년 100.2에서 지난해 101.5로 9년간 총 1.3% 오르는 데 그쳤다. 연간 0.1% 성장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제조업의 생산성은 과거 9년 동안 연평균 1.8% 개선된 추세를 보였지만 서비스업은 연평균 ―0.3%로 뒷걸음쳤다.

그나마 최근 들어 2016년 0.1%, 2017년 1.5% 등 2년 연속 개선됐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고용과 부가가치가 함께 늘어난 게 아니라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으로 고용이 줄어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다. 전형적인 ‘불황형’ 개선이다.

산업별로도 생산성이 크게 갈렸다. 반도체 등 전자(연 7.9%), 의료정밀(연 5.9%) 등 일부 제조업은 2008년 이후 생산성이 개선됐지만 조선(―1.2%), 건설(―2.1%), 숙박·음식업(―0.3%), 전문과학기술서비스(―1.4%), 교육서비스(―1.6%) 등은 생산성이 후퇴했다. 특히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돼 온 서비스업의 경우 규제를 풀지 못하고 음식·숙박업 같은 저부가가치 업종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체질 개선에 실패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노동생산성이 크게 뒤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4.3달러로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22위에 그쳤다. 1위를 차지한 아일랜드(88.0달러)와 비교하면 39%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60.4달러), 프랑스(59.5달러) 등은 물론이고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47.8달러)보다도 낮다.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지만 임금은 계속 올랐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전 산업 명목임금은 37.0%(연평균 3.6%), 실질임금은 14.6%(연평균 1.5%) 상승했다. 노동생산성이 임금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가격경쟁력이 악화된 것이다.

○ “생산성 높여야 근로조건 개선도 가능”

생산성 위기의 경고음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생산성은 철저하게 소외돼 있다. 일례로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 임금수준 △최저임금 산입범위 △소득분배 개선 △대외변수와 노사의견을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10.9%로 결정했다. 최저임금법에는 근로자 생계비, 근로자 임금, 소득분배율 등과 함께 노동생산성을 검토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논의 과정에서 생산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는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조건 개선으로 생산성이 오를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대로 근로조건 향상이 근로의욕을 높여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 선순환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생산성 향상이 전제돼야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근로조건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조차 “마차(일자리)를 말(경제성장) 앞에 둘 수 없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생산성 혁신이라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말을 마차 앞에 돌려주고, 말이 힘 있게 마차를 끌 수 있도록 마력(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성장산업으로 투자와 인력이 효율적으로 재배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국가적 정책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규제완화, 주력산업 중심의 기술혁신, 산업 구조조정 등 투자증대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지부진한 노동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생산성과 연동되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노동 경직성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공태현 인턴기자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노동생산성#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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