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에서 작은 식당을 하는 김모 씨(65·여)는 5년 전 연 금리 17%의 카드론으로 1000만 원을 빌렸다. 상권 좋은 대학가에 식당을 차렸으니 몇 달만 바짝 일하면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번 돈으로 이 빚을 갚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카드 2개를 더 발급받아 열 번 넘게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식당은 적자만 쌓여 갔고, 김 씨는 젊은 시절 꼬박꼬박 넣은 보험과 국민연금까지 해지해 카드론을 갚는 데 썼다. 최근엔 최저임금마저 인상돼 아르바이트 직원을 내보내고 홀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카드론 상환 독촉 문자가 올 때마다 살이 떨리도록 힘들어 부정맥이 생겼지만 가게 문을 닫을 수가 없다”며 “적자인 식당이라도 계속 꾸려나가야 카드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금리 카드론의 ‘굴레’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 취업준비생부터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주부,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까지 문턱 낮은 카드론을 찾고 있다.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카드론의 특성상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이 가속화되면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 급전 필요한 서민들 카드론으로
대구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모 씨(40)는 올봄 처음으로 카드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대출을 받았던 은행에선 가게 매출이 줄자 더 이상 돈 빌리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장사가 워낙 안 돼 생활비가 급했다”며 “카드론은 남에게 아쉬운 말 할 필요도 없고, 쉽고 빠르게 대출되니 계속 쓰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만 카드론을 비롯해 카드·캐피털사 가계대출이 3조9000억 원 급증한 것은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은행, 저축은행, 상호금융 대출을 엄격히 규제한 영향이 크다.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규제가 덜한 카드론으로 몰린 것이다.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박모 씨(52)는 올 들어 카드 2개를 번갈아 가며 카드론 30만 원을 쓰고 있다. 박 씨는 “신용등급이 나빠 은행 대출은 애초부터 기대를 못 한다”며 “요즘 일거리가 없어 작년보다 카드론을 더 쓰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이 최근 적극적인 대출 영업에 나선 것도 카드론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명식 상명대 교수(신용카드학회장)는 “최근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해 카드 수수료를 낮추겠다며 시장에 개입하니 카드사로서는 신용판매 대신에 대출 영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드론 대신에 서민들이 이용할 중(中)금리 대출이 다양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정부가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한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민을 위한 대출 상품이 많이 나오고 경쟁을 통해 금리가 더 낮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부실 폭탄 될 수 있어”
2003년 카드론에 처음 손을 댄 박모 씨(48·여)는 자녀 3명의 병원비와 교육비를 대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사채까지 끌어다 쓰며 카드론을 갚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채무감면)’을 신청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 고금리 카드론 이용자부터 대출이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카드론 이용자들은 연 금리 20% 안팎의 과도한 이자 부담과 수개월 단위로 돌아오는 짧은 만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카드로 빚을 돌려 막는 ‘다중 채무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카드사의 연체율은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카드사 연체율은 지난해 6월 말 1.91%에서 12월 말 1.80%로 하락했다가 올 3월 말 다시 1.96%로 상승했다.
특히 최근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취업난 등이 맞물리면서 수입이 일정치 않은 취약계층부터 파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신용회복위 관계자는 “상담자 중 일용직 노동자나 임시직 근로자가 80% 정도”라며 “이들은 카드론과 다른 신용대출을 끌어다 쓴 뒤 동시다발적으로 연체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신복위에 따르면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2013년 6만9679명에서 지난해 8만3998명으로 늘었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카드사들이 고객 신용도를 면밀히 따져 상환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만 대출하고, 상환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겐 정부가 복지 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김성모 기자 박정서 인턴기자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공태현 인턴기자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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