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용산 개발’ 발언이 도화선… 자금 몰리고 매물 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0일 03시 00분


정부 엄포에도 뛰는 서울 아파트값

9일 오후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아간 서울 용산구 신계동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 입구 중개업소는 대부분 문을 걸어 잠그거나 ‘8일부터 휴가’라는 메시지만 붙여 뒀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이틀 전 현장 단속을 벌인 곳이다.

하지만 일부 업소는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린 채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해당 중개업소 대표는 “불을 켜 두면 단속반이 올까 봐 불을 껐다”며 “용산구는 이미 개발계획이 나와 원래 집값이 오르던 곳인데 박원순 시장의 ‘개발’ 발언을 핑계로 (정부가) 지나치게 단속을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 여파 커지는 ‘박원순발(發)’ 가격 상승

현장에서 본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은 매주 ‘억 단위’로 가격이 오른 올 초 분위기와 흡사했다.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집을 사겠다는 사람만 중개업소를 찾고 있다. 특히 서울 전역의 아파트 가격이 동시에 오르고 있다.

이번 서울 집값 상승의 ‘1차 원인’이 지난달 박 시장의 싱가포르 발표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박 시장이 개발 지역으로 꼽은 용산구와 영등포구는 7월 둘째 주 이후 매주 집값 상승폭이 서울에서 가장 크다. 8월 첫 주 0.29%씩 오른 용산구와 영등포구 집값은 올해 누적 기준으로 각각 7.95%와 5.49% 올랐다.

다만 이번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원인을 오직 박 시장 발언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일종의 ‘도화선’ 역할을 했을 수 있지만, 이미 시장이 상승세로 전환되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가 2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 방안’이 오히려 시장에 ‘매입 시그널’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현장점검 강화 △다주택자 모니터링 강화 등 ‘구두 경고’를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 시장이 꿈틀거린다는 우려가 나오던 상황에서 기존 대책만 되풀이했다”며 “주택 구매자 입장에서 ‘규제 불확실성’이 제거된 셈”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넘치는 시중 자금이 ‘서울 아파트’ 이상의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토부 고위 당국자는 “시중에 도는 통화량(M2)이 26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이라며 “집값 안정 대책을 내놓아도 그 효과가 단기간에 그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공급량이 줄어 가격 상승이 이뤄진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서울 강남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아파트 신규 입주물량은 7179채 순감(純減)했다. 재건축 등으로 멸실된 아파트가 입주 아파트보다 많았던 것이다. 서울 전체로 봐도 지난해 아파트 순증(純增)물량은 1만4491채로 최근 6년 사이 가장 물량이 많았던 2014년(3만5459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 “단속 강화” 외치는 정부 속내는

정부는 주택 거래 단속에 의지하고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9일 관할구청, 국세청, 한국감정원 등과 ‘부동산거래조사팀’을 꾸리고 13일부터 집중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집을 살 때 제출해야 하는 자금조달계획서 등 서류를 조사해 업·다운 계약서 작성, 편법 증여 등이 의심되는 사례를 솎아낼 계획이다. 이달 말 서울 전역을 투기지구로 지정할 것이란 전망도 일부에서 나오지만 서울 25개 자치구는 이미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양도세 중과, 대출 제한 등 대부분의 부동산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투기지역으로 추가 지정되더라도 주택담보대출 건수가 차주(借主)당 1건에서 세대별 1건으로 바뀌는 것 외에 큰 영향이 없다.

양도세 강화 등 부동산 세제 개편도 지방 주택시장을 더 얼어붙게 할 우려가 있어 쉽게 꺼내기 어려운 카드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지금으로선 정부가 집값 상승세를 확실하게 꺾을 대책을 내놓기 어려워 ‘경고 사인’만 보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주애진 기자

이윤태 인턴기자 연세대 사학과 4학년
#박원순#용산 개발#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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