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초장기 호황)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비관론이 국내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반도체 시장 전망을 하향 조정한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코스피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휘청거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를 중심으로 반도체 업황이나 대표 기업의 실적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평가도 많다. 시장 전망이 엇갈린 가운데 한국 수출의 버팀목인 반도체 성장이 꺾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외국계 IB “투자 주의”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계 대형 IB를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5일(현지 시간)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내린 ‘매도’ 보고서를 내놓은 데 이어 9일 반도체 업종의 투자 전망을 ‘중립’에서 ‘주의’로 낮췄다. 주의는 모건스탠리의 투자 의견 중 가장 낮은 단계다.
보고서는 “반도체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리드타임(제품 주문에서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 단축, 수요 감소 등으로 상당 수준의 재고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도 이날 보고서를 내고 “내년 상반기부터 D램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보고서에 10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3.20%, 3.72% 곤두박질쳤다. 특히 지난달까지 9만 원을 넘나들던 SK하이닉스는 모건스탠리의 매도 보고서에 6일 8만 원이 무너진 데 이어 10일 연중 최저점인 7만5100원으로 주저앉았다. 6월 초 5만 원을 웃돌던 삼성전자도 10일 현재 14%가량 하락한 4만5400원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업황 하락을 우려하는 경고음은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DDR4 8Gb(기가비트) D램 고정거래가격은 8.19달러로 전달과 같았다. 2016년 2분기 이후 계속된 가격 상승세가 9개 분기 만에 멈춘 것이다. 후발 주자인 중국 기업들의 추격도 위협적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산업 진흥을 위해 3000억 위안(약 5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낸드플래시는 업황이 꺾였고 D램도 업황 둔화 조짐이 보인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반등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증권사 “급격히 꺾이진 않을 것”
하지만 낙관적 전망도 적지 않다. 시장정보업체 ‘IC인사이츠’는 국내 기업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D램 시장의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39% 증가해 단일 반도체 품목으로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대체로 반도체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제시한 삼성전자의 적정 주가는 평균 6만5000원, SK하이닉스는 11만1000원으로, 현재 주가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중국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 국내 기업과 낸드플래시는 5년, D램은 그 이상의 격차가 난다”며 “올해보다도 내년에 국내 기업들의 수익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늘리면서 서버용 D램 수요는 당분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록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장기간 올라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5세대(5G) 통신, 자율주행차 상용화 등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요인이 많아 업황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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