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공백에 ‘큰그림’ 못그려
신동빈 회장 6개월 넘게 구속… 채용-투자계획 못세우고 비상경영
연말 완공 롯데케미칼 美공장, 회장 없는 준공식땐 이미지 타격
국내 주요 대기업이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고용 및 투자 방안을 속속 내놓는 가운데 롯데만 5대 기업 중 유일하게 어떤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LG를 시작으로 올해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5대 기업이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약속했지만 재계 5위 롯데는 올해 상반기(1∼6월) 대졸 신입사원(1100여 명 규모) 채용과 계열사별 필요한 최소 인원 채용이 전부다. 지난 5년간 연평균 1만3000여 명을 채용하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온 롯데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 채용 및 투자 계획 없어… 실적도 저조
2016년 10조 원을 넘었던 투자액도 지난해 7조 원(추정치)으로 꺾이더니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투자와 고용은 최고경영자의 지휘 아래 큰 그림을 그려야 나오는데 지금은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올 2월 구속 수감된 후 10월 초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신 회장은 17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6개월 넘게 구속돼 신규 채용과 투자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롯데는 황각규 부회장과 유통, 화학, 식품, 서비스 등 4개 사업 부문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직간접 고용인원이 2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던 유통 부문은 실적까지 부진했다. 롯데쇼핑의 올 2분기(4∼6월) 당기순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롯데마트가 사드 사태 여파에서 회복되지 못한 탓이 컸다. 롯데쇼핑은 당분간 영업실적이 저조한 마트와 백화점의 점포 폐점과 비용 절감에 주력할 계획이다.
○ 해외 부문 투자도 멈춰
롯데케미칼은 올해 말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에탄크래커 공장(ECC)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공장은 에틸렌을 생산하는 곳으로 3조 원이 투입된 그룹의 숙원사업이다. 하지만 합작회사였던 미국 액시올사 인수를 통해 글로벌 시장 10위권으로 진입할 기회를 놓친 뼈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롯데는 2016년 신 회장의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액시올사 인수를 포기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회장 부재로 완공식이 진행되면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 타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비교적 실적이 좋은 화학 부문은 해외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역대 최대 영업이익(2조9297억 원)을 올리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TV 광고까지 했지만 인수합병은 2015년 ‘화학업계 최대 빅딜’이라 불린 삼성화학계열사가 마지막이었다. 1976년 회사 설립 이후 인수합병으로 회사 규모를 세계 화학기업 중 22위까지 키워온 기업으로서는 성장을 멈춘 거나 마찬가지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3년 전 그룹 총수의 적극적인 인수 전략이 이제야 좋은 실적으로 빛을 발한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 3년간 제대로 이뤄진 투자가 없어 앞날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 회장의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화학 부문의 실적이 최근 몇 년간 급증했지만 총수가 부재한 현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지을 예정이던 초대형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를 비롯한 해외 투자 검토를 모두 중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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