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매물이 하나도 없었는데 매물이 하나둘 나오고 있어요. 절대 팔지 않겠다던 사람들 중 일부가 불안했는지 물건을 내놓더라고요.”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인근 Y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27일 “하루 종일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여의도·용산 개발계획(마스터플랜)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한 뒤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여의도와 용산 일대 부동산시장의 기류가 또 한 번 바뀌고 있다. 지난달 10일 박 시장의 여의도·용산 개발계획 발표 후 ‘거품 논란’까지 일으킨 투자 열기가 다시 박 시장의 말 한 마디에 주춤하는 모습이다. 시장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박 시장이 섣부르게 개발계획을 언급해 혼란만 자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용산과 여의도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개발계획 보류 발표 이후 호가는 그대로지만 매수 문의가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10일 박 시장이 여의도를 뉴욕 맨해튼처럼 만들고, 서울역과 용산역 연결구간을 지하화해 개발하겠다고 한 지 한 달여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뀐 셈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박 시장의 ‘싱가포르 발언’ 이후 영등포구와 용산구의 아파트값(7월 9일 대비 8월 20일)은 각각 1.84%, 1.78% 올랐다. 이 기간 서울 전체 상승률(1.11%)을 웃도는 수치다.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여의도 시범아파트(전용면적 79m²)의 최근 호가는 14억 원까지 올랐다. 지난달 초 매매가는 11억9000만 원 선이었다. 이 단지 인근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격에 상관없이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집주인들이 15억, 16억 원에도 팔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보류 결정으로 여의도 재건축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여의도는 마스터플랜에 맞춰 지구단위별로 재건축을 추진해서 사업추진이 빠른 단지들조차 정비사업 계획 수립이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어서다. 여의도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무조건 사겠다던 매수자에게 오늘 매물이 나왔다고 연락했더니 더 떨어지지 않겠냐며 기다리겠다고 한다.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수차례 부침을 거듭한 개발계획이 또 한 번 좌초된 용산구 일대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이촌동 행복한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토요일까지 물건 있으면 전화 달라던 사람들도 오늘 통화하니 더 기다렸다가 사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번 결정으로 몇 천만 원 더 싸게 매물이 나올 거라고 보는 분위기”라고 했다. 용산구는 마스터플랜과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동시에 집값을 억누르는 분위기 탓에 당분간 이마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으로 두 지역의 집값이 단기적으로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의도와 용산은 강남 못지않게 입지가 뛰어난 지역이라 장기적으로 상승할 여력은 충분하지만 최근의 급등세가 너무 가팔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 전반으로 상승세가 번지면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집값을 잡겠다고 나선 만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두 지역은 현재 개발계획에 대한 기대심리가 컸던 만큼 실망한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공급부족 등 서울 집값을 떠받친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조정기는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다시 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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