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개편안에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만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내용이 포함되자 국민연금 가입자 사이에선 이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연금 수령 시기는 가입자들에게 가장 예민한 문제 중 하나다. 연금은 빨리 받을수록 좋다. 하지만 그 부담은 미래세대에 전가된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몇 살이 적절할까?
○ 당장은 65세에 힘 실려
동아일보가 16∼19일 연금전문가 20인을 설문조사한 결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현재 계획대로 ‘65세로 고정해야 한다’는 의견(10명)이 가장 많았다. 이유는 국내 노동환경과 은퇴자의 소득 공백 때문이다.
우선 현재도 대다수 가입자가 은퇴 후 바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수급 개시 연령은 60세였다. 하지만 1998년 1차 연금개혁 때 재정 안정 차원에서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늦춰졌다. 2033년 이후엔 65세가 돼야 연금을 받는다. 올해 연금 수령 개시 나이는 62세다.
반면 국내 직장인 평균 퇴직연령은 ‘53세’(2015년 기준)다. 이 나이에 은퇴하는 1957년 이후 출생자는 근 10년간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퇴직 후 연금을 탈 때까지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소득 크레바스(절벽)’가 나타나는 것이다. 국내 노인빈곤율(45.7%·2015년 기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만약 수급 연령을 변경하려면 △근로자 정년 △고령자 경제활동 참가율 △노동시장 실질은퇴 연령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해외에선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추면 고교생들이 오히려 반발한다”며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춘다는 건 기성세대의 은퇴 연령을 높인다는 뜻이고, 이는 곧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일단 수급 연령 변경은 배제한 상태다. 류근혁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현재도 2033년까지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늦추고 있는 상태”라며 “수급 연령 조정은 9월 나올 정부안에 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향후 수급 연령 인상 불가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급 연령을 늦출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연금 전문가 20명 중 절반인 10명은 66세(1명), 67세(4명), 68세(2명) 등으로 수급 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4.2%(711만5000명)다. 이 비율은 2035년 28.7%, 2065년 42.5%로 폭증한다. ‘국민의 절반’이 노인이 되는 반면 저출산으로 보험료를 낼 젊은층은 급감한다. 배준호 한신대 글로벌비즈니스학부 교수는 “한국은 세계적인 최장수 국가여서 67세 이상으로 수급 연령을 높이는 건 불가피하다”며 “평균 수급기간이 20년을 넘으면 지속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앞서 도입한 선진국들도 68세 전후로 수급 연령을 늦추고 있다.
가입자 기대여명(65세인 사람이 생존할 것으로 예측되는 기간)과 연금 지급액수, 기간을 제도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65세 여성의 기대여명은 2000년 18.2년에서 2016년 22.6년으로 늘어났다. 기대여명이 길어지면 국민연금 수급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재정 부담도 커진다.
핀란드의 경우 고령 인구가 늘어 연금 재정이 불안해지자 2005년 기대여명계수(LEC·Life Expectancy Coefficient)를 도입했다. 기대여명이 길어지면 연금 수령액과 수급 개시연령을 자동으로 깎거나 늦추는 제도다. 제도발전위도 17일 개편안에 2030년 이후 LEC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받는 연금 총량은 같게 하되 가입자에게 수급 연령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일찍 은퇴해 소득이 없는 퇴직자는 연금을 남들보다 일찍 받는 대신 나중에 받는 연금이 줄어드는 식이다. 반면 직장을 오래 유지하거나 근로소득이 있어 연금을 늦게 받으면 추후 더 많이 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개인의 역량이나 가계 상황, 근로소득 등을 감안해 연금 수급 시기를 선택하게 하는 유연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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