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미래 동력인 설비투자가 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긴 감소세를 나타냈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도 1년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치 밑으로 떨어지는 등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고용 쇼크와 내수 부진이 계속되자 한국은행은 9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통계청이 31일 내놓은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7월 설비투자 지수는 전달보다 0.6% 줄어 올해 3월부터 5개월 연속 뒷걸음질쳤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9월∼1998년 6월 10개월 연속 감소한 뒤 20년 만에 가장 긴 마이너스 행진이다. 그나마 5월(―2.8%), 6월(―7.1%)에 비해 감소 폭은 줄었다.
전(全) 산업 생산은 전달보다 0.5% 증가해 한 달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소매판매도 전달보다 0.5% 증가했다. 생산과 소비가 늘었지만 0%대 증가에 그쳐 추세적인 상승이라고 보긴 힘들다.
실물 지표는 물론이고 기업·소비심리 지표가 모두 바닥을 기면서 경기가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6개월 후 경기를 미리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한 99.8이었다. 이 지표가 기준선인 100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6년 8월(99.8)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올 5월 한 차례 보합세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올해 2월(100.6) 이후 줄곧 감소세다. 통상 이 지표가 6개월 연속 하락하면 경기가 둔화 내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본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것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면서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국면 전환을 선언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 불안이 계속되자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던 한은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 한은은 31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50%로 유지했다. 지난해 11월 1.25%에서 0.25%포인트 올린 뒤 6번째 동결이다.
참사 수준으로 악화된 고용지표와 미중 무역전쟁으로 불안 심리가 확산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글로벌 무역 분쟁, 신흥국 금융 불안 등 성장 경로상의 불확실성이 높고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아직 크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이 총재는 “현재 고용과 주택 시장의 문제는 경기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최근의 상승은 지방자치단체의 개발계획 같은 것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고용 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라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비용 요인을 통해 고용 조정을 하려는 유인을 높인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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