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기업 시몬스가 경기 이천에 침대박물관과 카페, 전시관을 결합한 문화 공간 ‘시몬스 테라스’를 연다. 이번 주 금요일(7일)이다. 이 회사 안정호 대표(47)와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가 공들여 준비한 공간이다.
회사 초청으로 가오픈 기간 중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시몬스 테라스는 중부고속도로 남이천 나들목(IC)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시몬스침대 매트리스 제조공장의 발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표지판이 없으면 공장인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했다. 주차장은 건물 지하와 공장 뒤편에 숨어 있어서 지상에는 차들도 별로 없다. ‘테라스’는 공장 입구 쪽에 유럽풍 벽돌건물 두 동으로 이뤄져 있다.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정원과 채소밭이 배치돼 있다. 소규모 미술관 분위기다. 한국시몬스는 이곳을 이천 지역의 문화예술 거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시몬스는 2015년 친환경 콘셉트의 신규 공장을 짓기 시작하며 문화공간도 함께 기획했다. 친환경 제조시설이 완비된 공장은 이미 2017년 8월에 가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테라스’는 공장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준비에 1년 남짓 더 걸렸다. 왜 그랬을까.
“어디서 무언가를 보고 와서 그대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면 금방 만들었을 겁니다. 어디에도 없는 것을 만들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도 참고할 만한 침대 매트리스 관련 박물관이 없어서 우리가 모든 걸 새로 기획해야 했습니다.” 안 대표의 말이다.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 19세기 침대공방 재현한 ‘헤리티지 앨리’ 시몬스 테라스의 심장인 ‘헤리티지 앨리’ 박물관은 2층에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차근차근 수집한 침대와 매트리스 관련 전시품이 진열돼 있다. 1870년 미국 시몬스를 창업한 잴먼 시몬스의 공방을 재현해놓은 방에는 만들어진 지 100년 넘은 초창기 스프링 침대 프레임과 제작도구, 시몬스 광고가 실린 1950년대 ‘LIFE’지 등이 전시돼 있다. 진열품의 가짓수는 많지 않으나 하나하나의 주목도가 높다. 사진도 예쁘게 찍힌다.
이런 전시를 어떻게 기획했을까. 안 대표는 외부 전시전문 업체가 아니라 내부 디자인 스튜디오의 고뇌로 만든 기획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콘셉트를 잡기 위해 프라다, 에르메스 등 럭셔리 브랜드가 운영하는 미술관과 역사관을 견학했다. 하이네켄과 삿포로 등 해외 유명 맥주공장의 투어 프로그램도 참고했다. 특히 안 대표는 밀라노 인근 프라다 재단 미술관(Fondazione Prada)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아닌, 예술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시몬스도 제품 자체를 뽐내기보다는 ‘숙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전달하기로 마음먹었다.
“고객들은 좋은 매트리스를 구매하기 위해 매장에 들어오지만, 들어오는 순간 침대 프레임이나 베딩 등에 눈이 가게 됩니다. 몸은 숙면을 원하지만 정서는 침실이라는 공간을 원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몬스의 브랜드 유산과 장인정신을 설명할 때도 소비자를 가르치듯 자랑을 늘어놓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숙고를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공간 자체가 브랜드의 철학과 지향점을 대변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현대적 감각으로 꾸민 전시물도 있다. 침대 내구성 테스트에 사용되는 100kg급 목재 롤러를 매트리스 위에서 쉼 없이 좌우로 굴리면서, 그 위에는 번쩍이는 미러볼을 달아 묘하게 신나는 분위기를 냈다. 유명 카페도 입점시켰다. 1층과 2층의 넓은 공간을 무료 제공하는 조건으로 서울에서 커피 맛 좋기로 소문난 가게를 어렵게 모셔 왔다는 설명이다. 젊은 세대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패션 매거진을 챙겨 보고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들어가 본다고 답했다.
○ “침대가 너무 재밌다”
침대 위에 볼링공을 떨어뜨리는 광고로 유명한 시몬스는 포켓스프링 기술을 만든 미국 시몬스사의 한국 라이선스 사업으로 출발했다. 1992년부터는 독립법인으로 운영됐고 자체 연구개발 역량도 높였다.
안 대표 취임 이후 시몬스는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지만 특히 최근 분위기가 좋다. ‘5성급 호텔에서 쓰는 프리미엄 침대’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이 주효했다. 지난 5년 동안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두 배 정도로 늘어났다. 2017년 매출은 1733억 원, 영업이익은 220억 원이었다. 개당 2500만 원까지 하는 ‘뷰티레스트 블랙’ 라인만으로도 연 300억 원의 매출을 바라볼 정도로 프리미엄 침대 시장의 강자가 됐다. 이 가격대에선 딱히 경쟁사라고 할 곳도 많지 않다.
안 대표는 솔직히 20대에는 침대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재미있다고 말한다. 특히 품질을 꼼꼼히 챙긴다. 회사에서는 매트리스에 들어가는 소재를 조금씩 바꿔보며 직접 누워서 차이를 점검한다. 집에서는 자사 제품 4종류를 사용한다. 해외 출장을 가면 매번 새로운 호텔에 간다. 안 누워본 침대에 누워보기 위해서다.
시몬스 테라스 역시 안 대표가 구석구석 챙겼다. 인터뷰 직전 그는 카페 옆 수유실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서 무얼 했냐고 물으니 직원들과 페이퍼타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재생지로 만든 친환경 페이퍼타월이 아기 엉덩이에 쓰기엔 너무 꺼끌꺼끌하니 수유실만큼은 부드러운 것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수천만 원짜리 침대를 만드는 사람다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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