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고용부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고용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쳐 현 정부의 약점으로 꼽히는 일자리 창출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6월∼2013년 3월 고용부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각종 노동법안에 앞장서 반대하는 등 친(親)기업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가 노동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데 반대해 온 이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에서 소신을 유지할지 주목된다.
동아일보는 이 후보자의 ‘노동 철학’을 검증하기 위해 이 후보자가 차관 시절 참석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전수 조사했다. 당시 쟁점은 정년 연장(58세→60세)이었다. 여야 의원들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정년을 늘리는 데 공감을 이뤘지만, 시행 시기와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놓고 대립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정년 연장은 필요하지만 시기가 빠르다”며 “기업이 자율적으로 연장하도록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노사가 자율로 60세 정년을 정착시키는 흐름이 만들어진 이후 법제화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셈이다.
이 후보자는 특히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려면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연공급(연공서열 호봉제) 체계가 굉장히 심하다”며 “(법을 개정하면서) 임금 조정(임금피크제) 없이 정년만 연장하는 형태로 가면 노조가 임금피크제에 동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임금피크제는 정책 수단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정년 연장 의무만 남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후보자의 주장에 따라 60세 정년은 2016년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고,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구가 관련 법에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원 시절 대표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이 후보자가 강하게 반대한 점도 눈에 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국내 근로자 평균 임금의 50% 이상이 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종의 최저임금 하한선 제도다.
이에 이 후보자는 “법에 목표 지향점을 설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임금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심하다”며 “법에 50%라는 기준을 두면 굉장히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금통계와 기준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오히려 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정부와 당시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다만 올해 최저임금(시급 7530원·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급 157만3770원)은 국내 1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 평균 임금(6월 기준 322만4000원)의 48.8%로 50%에 육박한다.
이 후보자는 또 당시 여야가 함께 추진한 공공부문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를 두고 “공기업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간병인 최저임금 적용 △파견 규제 확대 등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이 후보자는 정부가 노동시장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편 이 후보자가 2000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를 3억7000만 원에 사면서 이른바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1억5000만 원으로 신고한 뒤 취득세 등을 탈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자 측은 “송구스럽다”며 “미납된 세금을 파악해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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