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이와키리 아이 씨(31·여)는 대형마트 ‘이온(AEON)’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쇼핑을 끝낸 이와키리 씨는 3만 원가량을 체크카드로 결제했다. 이 카드엔 인터넷전문은행 이온뱅크를 이용하면서 적립한 포인트가 5만 원 정도 쌓여 있었다. 이날 마트 결제로 체크카드에는 또 15포인트(150원)가 쌓였다. 이온뱅크는 일본 유통회사 이온그룹이 세운 인터넷은행이다. 그는 “일본은 은행 수수료가 비싼 편인데 대형마트와 결합한 인터넷은행을 이용하면서 포인트도 쌓고 각종 금융 수수료도 면제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정보통신기술(ICT), 유통, 통신, 전자 등 다양한 업종의 대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뛰어들어 ‘금융 혁신’을 이끌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인터넷은행 관계자들은 “일본 인터넷은행들은 모기업을 발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다양한 업체가 진출한 만큼 상품과 서비스도 각기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정부가 전격적으로 대기업의 은행 지분 소유를 100% 허용한 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은산(銀産)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인터넷은행 열기가 수그러든 한국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 대기업 참여한 인터넷은행 8곳
일본은 일찍이 2000년 만들어진 ‘인터넷은행 설립 가이드라인’에 따라 인터넷은행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업체들도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제한한 규제에 막혀 자본 수혈에 어려움을 겪었다. 부도 직전의 인터넷은행까지 생기자 일본 정부는 은행산업의 혁신을 유도하기 위해 2005년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0% 보유할 수 있도록 과감히 규제를 풀었다. 그러자 일본 1위 전자상거래업체인 라쿠텐, 대형 통신사 KDDI, 전자회사 소니, 편의점 세븐일레븐 등 대기업들이 일제히 뛰어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인터넷은행 8곳은 현재 열띤 경쟁을 벌이며 새로운 서비스를 쏟아내고 있다. 현지 인터넷은행 1위인 라쿠텐뱅크는 모기업인 라쿠텐의 전자상거래 노하우를 살려 급성장했다. 이 은행의 나가이 히로유키 대표는 “라쿠텐의 온라인쇼핑몰 고객 9000만 명이 은행의 잠재 고객이 된 셈”이라며 “온라인쇼핑몰에서 쓰는 포인트를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여 은행 고객을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라쿠텐 계열사들의 포인트를 통합하고 은행 거래 실적에 따라 등급을 나눠 포인트를 차등 지급한 것이 젊은 고객들에게 먹혔다.
지분뱅크는 대주주인 통신사 KDDI를 발판으로 고객을 끌어모았다. 요시카와 도루 지분뱅크 이사는 “통신사 영업점에서 지분뱅크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KDDI 고객 3000만 명 중 200만 명이 은행 고객이 됐다”고 말했다. 지분뱅크는 KDDI의 기술을 결합해 인공지능(AI)으로 1시간, 1일 단위로 환율을 예측해 외화예금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산업-금융자본 시너지로 급성장
인터넷은행이 늘면서 ‘이자 장사’를 하지 않고도 돈을 버는 은행까지 생겨났다. 세븐일레븐이 설립한 인터넷은행 세븐뱅크는 금융 당국에서 대출 관련 허가를 받지 못했다.
설립 초기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세븐뱅크는 일본 전역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 망을 활용해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놨다. 고객들이 편의점에 설치된 2만3000여 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365일 24시간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ATM에는 12개 언어 서비스와 외화 송금 기능도 탑재했다. 다른 은행들도 이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대신에 사용료를 받았다. 현재 세븐뱅크의 수익에서 이와 같은 사용료를 포함한 비이자 이익은 95%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 핀테크매체 ‘닛케이핀테크’의 하라 다카시 편집장은 “현재 일본에서 영업 중인 은행은 130개가 넘지만 일본 정부는 인터넷은행을 등장시켜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만들어 내게 했다”며 “이 같은 노력에 일본의 인터넷은행 산업은 6년 동안 2배 이상 성장했고 관련 일자리도 2배 가까이로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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