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내놓은 ‘9·13부동산대책’의 대출 규제는 은행 등 금융회사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집을 한 채라도 가진 유(有)주택자와 고가 주택 구입자들도 실수요 목적이 아니라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길을 전면 차단했다.
특히 그동안 집값이 가파르게 치솟은 ‘규제지역(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을 타깃으로 했다. 최근 부동산시장 과열이 이들 지역에서 주택 구매에 나선 ‘투기 수요’ 때문이라고 보고 이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거둬들이기로 한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앞으로 은행 돈을 빌려서 지금 살고 있는 집 외에 추가로 주택을 구입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라며 “돈 많은 사람이 자기 돈으로 구입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투기적 수요에 은행이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투자 목적 대출 ‘원천 봉쇄’
이번 대책에 따르면 집을 한 채라도 소유한 사람은 당장 14일부터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예외적으로 새 집으로 이사하려는 사람이나 결혼, 부모 봉양 등의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은 집을 한 채 갖고 있어도 은행 심사를 통해 대출이 허용된다. 다만 대출받은 날로부터 2년 안에 기존 집을 팔아야 한다. 이런 실수요자는 무주택자와 같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을 적용받는다. 아울러 무주택자인 자녀가 분가해서 새 집을 사는 경우, 지방으로 직장을 옮기거나 60세 이상인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집을 추가로 사야 할 때도 예외적으로 대출이 허용된다.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 가구는 규제지역에 있는 집을 새로 살 때 주택담보대출이 아예 금지된다. 1주택자처럼 예외적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또 무주택자가 규제지역에서 공시가격 9억 원을 초과하는 고가 주택을 살 때도 2년 안에 거주하려는 실수요자가 아니라면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다. 집을 한 채 소유한 가구도 기존 주택을 2년 안에 처분해야만 대출을 받아 고가 주택을 살 수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서울에서 공시가격 9억 원(시세 13억 원 기준)을 넘는 아파트는 20만1741채에 이른다.
○ 2주택자 생활비 명목 대출도 옥죄어
집이 있는 사람도 주택 구입이 아니라 의료비 교육비 등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갖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길은 열려 있다.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의 1주택자는 기존 집을 담보로 지금처럼 LTV와 DTI 40%를 적용받아 생활자금 목적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4일부터 주택 두 채 이상을 가진 다주택 가구는 이런 대출을 받을 때 LTV, DTI 모두 10%포인트 강화돼 30%를 적용받는다.
또 생활자금 용도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사람은 대출 기간 동안 주택을 더 구입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은행과 맺어야 한다. 은행은 대출자가 추가로 주택을 사지 않았는지 3개월에 한 번씩 확인해야 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약정을 어긴 사람은 즉각 대출금을 은행에 돌려줘야 하고 주택 관련 대출이 3년간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 ‘가짜 실수요자’ 걸러내기가 관건
금융당국은 ‘대출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14일부터 즉각 대출 규제를 실시하면서 은행권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최종구 위원장은 이날 대책 발표 직후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주요 은행장 등과 간담회를 열어 “이번 대책이 시장에서 혼선 없이 시행되려면 금융권이 대출자의 주택 보유 수 변동, 대출 자금 용도 등을 점검해야 한다. 사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가짜 실수요자’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나도 실수요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주택시장 과열을 일시적으로는 막을 수 있어도 고가 주택시장을 주무르는 자산가들에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준형 명지대 교수는 “고액 자산가들은 대출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못 움직이면 더 환영할 것이다. 현금 자산이 많은 이들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수요자 상당수가 투자를 포기하거나 관망세로 돌아서 서울지역의 집값 상승세를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실수요자여도 대출이 막히는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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