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시애틀. 난생처음 간 미국 출장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시애틀 국제무역센터는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었고 건물 디자인도 첨단이었다. 1층에 널찍한 홀이 있었고 엘리베이터 옆에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카페가 이상했다. 아침과 점심 장사만 하고 오후 일찍 문을 닫아버렸다. 직원들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는 칼같이 퇴근해 버렸다. 점심시간이 따로 없었고 집에서 가져오거나 1층 카페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일하다가 5시에 집으로 갔다.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어떤 직원이 4시에 퇴근하기에 왜 이리 일찍 가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오전 8시에 출근했으니까 1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이고, 오늘은 아내 대신 자기가 유치원에 다니는 큰아이 데리러 가는 날이라고 했다. 1996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47달러(한국 1만3000달러)였고 유연근무제, 칼퇴근, ‘나인투파이브’(9시 출근, 5시 퇴근), 워라밸(일 가정 양립)이 이미 정착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난 22년간 계속해서 세계 최강이었고, 요즘 미국 경제는 세계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8년 한국. 우리도 3만 달러 소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최저임금, 주 52시간, 워라밸 등등으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다. 가장 즐거워야 할 추석을 앞두고도 즐겁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이 그렇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선진국들은 임금 수준이 높고, 근무시간은 짧고, 일·가정 양립이 정착된 나라들이다. 즉, 생산성이 높은 나라들이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더구나 대·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는 선진국보다 훨씬 크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30.5%에 불과하다. 제조업을 기준으로 하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29.1%에 불과하고, OECD 24개국 가운데 24위로 가장 낮은 편이다.
생산성이란 출력(아웃풋)을 입력(인풋)으로 나눈 것이다. 경비 절감과 불필요한 업무의 삭제 등 소소한 개선에서부터 생산 공정과 업무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뒤엎는 혁신까지 모두 다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된다.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새롭게 수출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유럽 19개국 11만 개의 중소기업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출 업체들은 비(非)수출 업체보다 생산성이 1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화된 유럽의 중소기업들은 국내 시장만을 상대하는 기업들보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할 가능성이 3배 높고, 성장 속도도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의 대표와 임직원들이 합심하여 소소한 개선부터 과감한 혁신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2018년 서울을 1996년 시애틀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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