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수입 70만 원… IMF 때도 이렇진 않았다”

  • 신동아
  • 입력 2018년 9월 24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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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민 정부’? 추석이 두려운 서민들
총체적 위기 J노믹스

● 주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수해…돌아서는 민심
● 수해민 “살림살이 하나 없이 추석 어떻게 보내나”
● 소상공인들 “조만간 입에 풀칠도 못 하겠다”
● “정권이 바뀌면 뭐하나,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

폭우로 살림살이가 다 떠내려간 응암3동 지하방(왼쪽). 옹벽이 허물어지면서 빗물이 안방을 덮쳐 수해를 입은 중계4동 노부부의 집. [홍중식 기자]
폭우로 살림살이가 다 떠내려간 응암3동 지하방(왼쪽). 옹벽이 허물어지면서 빗물이 안방을 덮쳐 수해를 입은 중계4동 노부부의 집. [홍중식 기자]
수확과 풍요의 상징인 추석이 언제부터인가 많은 이에게 ‘부담’과 ‘절망’의 명절로 변해버렸다. 날로 팍팍해지는 삶에 서민들 입에서는 “차라리 명절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심지어 생각지도 못한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이번 추석은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할 수밖에 없다.

서울 은평구 응암3동, 노원구 상계4동 수재민이 대표적이다. 추석을 20여 일 앞둔 9월 3일, 응암3동 주민센터로 이어진 골목길에는 흙탕물이 묻은 세간과 가전제품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지난 8월 28일부터 3일간 이곳에 ‘물 폭탄’ 수준의 비가 쏟아지면서 500여 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은 탓이다. 특히 지하방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피해가 심각하다.

응암3동은 은평구 16개 동 중에서 노인 인구와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최근 응암1·2동이 재개발되면서 주민의 상당수가 응암3동으로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침수 피해 주민 중에도 혼자 사는 노인이 많다.

지난 3월 이곳으로 혼자 이사한 임모(69) 씨도 상황이 비슷하다. 임씨의 집은 방 2칸에 화장실 1개, 작은 주방이 딸린 구조의 다가구주택 1층이다. 지하방은 아니지만 지대가 낮아 갑자기 터진 물난리에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었다.

지하방 덮친 폭우, 살림살이 다 떠내려가

“저녁 8시쯤 갑자기 방에 물이 차기 시작했어요. 깜짝 놀라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위로 올렸는데, 그사이 빗물이 가슴까지 차올랐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빗소리가 워낙 세서 밖에는 들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던 찰나에 아는 동생이 밖에서 문을 열어줘서 겨우 살았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나 싶어 울적하죠.”

동사무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물에 젖은 옷가지는 세탁해 건졌지만, 냉장고· 전기밥솥 등 세간 대부분을 잃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가 더 옹색해지고 만 것. 장판을 뜯어낸 시멘트 바닥은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쉬 마르지 않는 듯 보였다.

임씨는 현재 보증금 5000만 원에 전세를 살고 있다. 생활비는 매달 기초연금 26만 원에, 공익활동으로 버는 27만 원이 전부다. 둘을 합쳐봤자 53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 공과금과 통신비 등을 내고 나면 식비를 해결할 돈도 빠듯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몇 년간 난소암 등 암 수술을 3차례나 받으면서 임씨의 형편은 더욱 안 좋아졌다.

임씨는 “구청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도배·장판밖에 없다는데, 앞으로 살림살이는 뭔 돈으로 사야 할지 모르겠다. 곧 추석이라지만 이 난리 통에 명절은 무슨 명절인가.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진다”며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가면 좋겠다”

폭우는 독거노인인 박모(92) 할머니의 집도 할퀴고 갔다. 30년째 응암동에 살고 있는 박 할머니는 현재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8만 원짜리 반지하방에서 생활한다. 미국으로 시집간 딸은 못 본 지 오래됐고 추석에 찾아올 사람도, 갈 곳도 없다. 허망한 얼굴로 집 앞 골목에 앉아 있는 박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붙이자, 할머니는 한참 뒤 어렵게 입을 떼 “그때 죽었어야 되는데, 그냥 지금이라도 가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해 침대가 아니면 잠을 이루기 힘든 박 할머니는 현재 주민센터 이재민 대피소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결국 쓰러져 의식을 잃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병원에 데려가서 영양제 주사를 한 대 놔준 덕분에 겨우 기운을 차렸다”며 울먹였다.

노원구 상계4동도 이번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수락산 아래에 살고 있는 김모(80) 씨 부부는 한밤중에 창문을 뚫고 들어온 물벼락에 휩쓸려 거실까지 몸이 날아갔다. 그날의 충격 때문인지 여전히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는 아내 최모(74) 씨는 “그래도 그날 우리 아저씨(남편)랑 같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남편 없이는 못 산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현재 이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무허가 건물이다. 안방 벽 뒤로 옹벽이 세워져 있었지만, 산에서 내려온 빗물이 순식간에 김씨 집 뒤로 흘러들어가면서 옹벽을 무너뜨리고 그 물이 집 안까지 밀려들었다. 갑자기 들어찬 빗물에 안방 문도 다 떨어져나갔다. 김씨는 안방 벽에 걸려 있는 벽걸이형 에어컨을 가리키며 “그나마 저거 하나 건졌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중계4동 주민센터 앞 상가 지하에서 이불 공장을 하는 김모(55) 사장은 이번 수해로 5000만 원 상당의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물에 젖어버린 원단과 못쓰게 된 재봉틀 가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밖에도 에어컨, 냉장고 등 공장 내 모든 집기가 물에 잠겨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김 사장은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뒤로 직원을 두 명이나 잘랐는데, 생각지도 못한 수해 때문에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게 딱 이런 심정 아니겠느냐”며 애통해했다.

자연재해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서민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 탓에 날로 살기 힘들어지는 이들의 절규 또한 처절하기 짝이 없다. 서울 상도동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는 정모(63) 씨는 한 달 수입이 70만~80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것도 세탁소 본업 외에 일반 회사를 상대로 휴게실이나 당직실에서 나오는 침구류를 세탁해주는 대가로 버는 돈이다.

“높은 데 있는 사람들은 귀도 눈도 닫았나”

정씨는 “소규모 세탁소는 80~90%가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면 된다. 침구 세탁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 밥줄이 완전히 끊기면 큰일”이라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IMF 외환위기 때나 금융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지금처럼 먹고살기 힘든 적은 없었다는 얘기였다. 정씨는 “과거에는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힘든 사람이 태반이다. 최저임금제니 뭐니 하면서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살길이 더 막막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가끔 가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도 어느 순간 종업원이 다 사라지고 부부 둘이서 일하고 있더라.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높은 데 있는 사람들은 귀도 닫고 눈도 닫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상권이 좋아도 ‘불황’에는 장사가 없다. 직장인 수요가 많기로 소문난 서울 마포구 공덕동과 아현동도 일부 상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다. 아현동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가게 문 연 지 1년 정도 됐는데, 최근 두 달처럼 장사가 안 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여름철은 비수기라 원래 손님이 뜸하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같다. 주52시간근무제로 직장인들이 칼같이 퇴근해서 그런지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푸념했다.

회식하는 직장인이 없다

박씨는 당구장을 열기 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40년 가까이 공작기계 사업을 했다. 하지만 최근 그곳이 재개발되면서 회사 문을 닫고 업종을 바꿨다. 15년 가까이 공덕동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던 박씨의 아내도 최근에는 건강이 나빠져 사업을 접었다. 현재는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고 부부가 함께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에 두 아들까지 돈 들어갈 데는 많은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 걱정이다. 아내가 다시 음식점을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지금은 차라리 장사를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계획을 접었다”고 말했다.

공덕역 근처 재래시장, 공덕시장도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전과 족발로 유명한 이곳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여의도, 서소문 소재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하다. 공덕시장에서 20년째 전집을 운영하고 있는 여사장 김모 씨는 “4~5년 전에 비하면 매출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근처에 새로운 식당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타격이 큰 건 직장인 회식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점. 김 사장은 “예전에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단체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동네 어르신들이 만 원짜리 전 한 접시에 막걸리 몇 잔 드시는 게 전부다. 채소며 식용유, 밀가루 값은 계속 오르는데 전 값은 올리지 못하니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명절 수요도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명절 음식 중에서도 전은 손이 많이 가는 대신 집에서 만들면 사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 생각에,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바로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지난 설 때도 그랬지만 이번 추석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어느 정도 밥은 먹고사는데, 주변에 보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나’ 싶을 정도로 힘들게 장사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동대문시장 일대에서 퀵서비스 기사들이 오토바이로 배달하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퀵서비스 매출도 30% 이상 줄어들었다. [뉴스1]
서울 동대문시장 일대에서 퀵서비스 기사들이 오토바이로 배달하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퀵서비스 매출도 30% 이상 줄어들었다. [뉴스1]

“밤낮으로 벌어도 형편은 더 어려워져”

남들 다 쉬는 명절이지만,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많다.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인 최모(55) 씨는 1년에 한 번만 고향집에 간다. 이번 추석에는 서울에 남아 야간 배달을 할 예정이다. 오토바이 퀵서비스업은 1년 내내,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얼마나 일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구조다. 낮보다 야간에 일하면 수입도 배가 된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일거리가 30% 가까이 줄어들면서 최씨의 형편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그는 “인쇄소나 샘플실 등에서 주로 야간에 퀵을 많이 부르는데, 주52시간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수요가 뚝 끊겼다. 그것과 상관없는 곳들도 요즘 하도 경기가 안 좋으니 ‘웬만하면 비싼 퀵은 부르지 말고 직원이 직접 다녀오라’고 한다더라”며 씁쓸해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서민의 고충이 없는 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소상공인협회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 폐해는 현장에 가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J노믹스의 덫에 걸린 소상공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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