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주도성장, 번역 못 할 경제 개념
● 과거 통계 보정 때 불평등 OECD 5위
● 소득통계 오히려 정부에 칼이 돼 돌아가
● 고용지표 악화, 분배 효과 적다는 증거
● 부유세로 불평등 해결 못 해
● 종부세, 실현 안 된 소득에 세금 매기는 것
통계가 소득주도성장 논쟁에 불을 지폈다. 발단은 통계청이 실시한 올해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다. 조사에 따르면 1분기(1~3월)와 2분기(4~6월)에 공히 저소득 가구 소득은 줄고 고소득 가구 소득은 늘었다. 소득불평등이 심화한 것. 2분기의 경우, 1분위 소득(132만4900원)과 5분위 소득(913만4900원) 격차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빈자를 살리겠다는 정책이 되레 ‘거대한 역설’로 되돌아온 셈이다.
가계동향조사보다 실제 불평등 훨씬 심각
이후 통계청이 정치 논쟁의 격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청와대가 취임 갓 1년을 넘긴 황수경 전 청장을 교체해 논란을 더 키웠다. 8월 27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에서는 “빈곤층 비중을 많이 둔 표본이 추출돼 빈부격차가 많이 나온 것”(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여당의 방어와 “청장이 바뀌었다고 다시 표본을 조정하면 누가 그걸 믿겠나”(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라는 야당의 공세가 핑퐁처럼 오갔다.
김낙년(61)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년 전부터 가계동향조사의 오류를 줄기차게 문제 삼아온 학자다. 고소득자가 과소 파악돼 통계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근거다. 대신 김 교수는 2014년에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소득세 자료)를 활용한 논문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을 내놨다. 논문에서 김 교수는 가계동향조사 결과보다 실제 불평등지수가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객관적 수치로 논증했다.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활용한 방식과 같다.
김 교수는 이 논문을 피케티가 주도하는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에 등재했다. 같은 해 방한한 피케티가 언급한 한국의 소득불평등 현황도 김 교수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가계동향조사의 정확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에 통계청은 2017년 4분기를 마지막으로 가계소득동향조사를 폐지키로 지난 2016년 말에 결정했다. 대신 국세청 자료 등을 활용한 ‘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로 대체해 연간 단위로 공개할 예정이었다. 김 교수의 방법론이 대안에 반영된 것.
김 교수는 가계동향조사 보완책에 더해 조선 후기 이후 경제·사회 통계를 집대성한 성과 등을 인정받아 2016년 통계청으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정작 줄곧 오류라고 꼬집어온 조사가 정치적 논란거리로 떠올랐으니 그도 생각이 많았을 터. 김 교수를 9월 3일 동국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나 대뜸 이 질문부터 꺼냈다.
“통계로 소득주도성장 효과 보려 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가계동향조사는 8000가구를 샘플로 정해 3년 동안 지출과 소득이 포함된 가계부를 쓰게 하는 거죠. 취지는 좋아요. 문제는 이걸 제대로 쓰느냐 여부죠. 미주알고주알 다 써야 하니 제대로 쓰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사람은 그걸 왜 쓰겠어요? 반대로 어려운 사람은 그걸 쓸 여유가 없겠죠. 이렇다 보니 중간그룹만 과대 반영되는 거예요. 제가 연구하려고 보니 가계동향조사를 바탕으로 한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수.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가 소득세 자료를 토대로 구한 수치와 너무 안 맞는 거예요.”
2014년 김 교수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국세청 소득세 자료를 보정해 내놓은 ‘수정 지니계수’는 가처분소득 기준 0.371로, 통계청 수치(0.314)를 크게 웃돌았다. 가계동향조사 지표보다 실제 소득불평등이 더 심각하다는 뜻.
“국세청 자료와 비교해봤더니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소득이 올라갈수록 포착률이 급속히 떨어졌습니다. 소득 2억 원이 조금 넘으면 샘플이 아예 없어요. 아래쪽도 마찬가지고요. 보정해보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 수준의 불평등도가 나오더군요. 가계동향조사가 엉터리라는 걸 증명한 거예요.”
그래서 원래는 조사를 없애기로 했었죠.
“논문이 나온 후 국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 여당(더불어민주당)이 당시 통계청에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래서 가계동향조사는 2017년까지만 하고 끝내겠다고 결정이 났고 그 결과도 공표하지 않기로 한 거죠.”
잠시 시간과 장소를 2014년 10월 13일 국회로 바꿔보자. 이날 통계청에 대한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계청 자료는 믿을 수 없다. 금융소득 상위소득자를 과소 파악할 경우 숫자가 달라지는 등 지니계수 통계가 왜곡돼 정책 효율성을 거둘 수 없는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김낙년 교수의 논문을 근거로 댔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통계청은 정확한 지니계수를 만들 의지가 없어 보인다. 소득불평등도가 정확히 드러나면 민심을 어지럽히고 집권세력에 불안감을 주는 과도한 걱정 때문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가계동향조사를 ‘민주당이 문제 삼았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사실인 셈.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해 말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가계동향조사 예산(28억5300만 원)을 끼워 넣었다. 가계동향조사를 폐지하는 데 역할을 한 민주당이 조사를 존속시킨 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4분기(10~12월) 조사에서 하위 20% 소득이 높아졌어요. 정치적 효과가 있을 거라 봤으니 폐지를 미뤘겠죠. 그런데 웬걸. 다음 두 분기 조사에서 하위층 소득이 떨어진 겁니다.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 효과를 조급히 보려고 없애기로 한 조사를 힘으로 밀어붙여 끌고 가다가 도리어 통계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칼이 돼버린 거죠.
통계청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한 건데, 이제 와서 책임지는 모양새가 되니 황당하겠죠. 책임을 물어 통계청장을 교체한 게 아니겠어요? 정부가 부인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그렇잖아요. 통계 때문에 장하성 정책실장의 입지까지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 돼버렸잖아요. 통계가 정치화한 겁니다. 문제가 심하게 꼬였어요.”
최근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 전면 개편을 위해 내년 가계동향조사 예산을 올해(28억5300만 원)보다 다섯 배 이상 늘어난 159억4100만 원으로 편성했다. 또 소득부문과 지출부문으로 나누어 조사해 발표하던 것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은 표본 구성에 대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통계청은 방식을 바꾸고 예산도 늘리기로 했는데요.
“설사 돈을 붓고 표본을 제대로 선정한다 하더라도 그걸 믿을 수 있느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조사가 불가능한 걸 수치로 내놓고 왈가왈부하는 일이 반복되면 국가로서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셈이죠.”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게 무슨 뜻이죠?
“분기 기준으로 소득수준을 조사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어요. 미국 가계소득조사에 해당하는 CPS(Current Population Survey)의 경우 가구소득에 관해선 1년에 한 번, 3월에 조사합니다. 2월에 그 직전 해 소득을 신고하기 때문이에요. 본인이 신고했기 때문에 정보를 알 수 있고, 그걸 그대로 쓰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누가 나에게 소득을 묻는다고 칩시다. 월급이야 알 수 있지만, 분기마다 이자수입이나 기타소득을 파악해두긴 힘들지 않겠어요? 당연히 가계부에 쓸 수가 없죠. 우리나라 금융소득이 50조 원 수준인데, 2분기 가계동향조사 금융소득을 합계해도 5조 원밖에 안됩니다. 누락되는 거죠. 소득은 1년 정도 지나 연간 소득을 신고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거예요. 계절에 따라 수입의 높낮이도 있을 텐데 이 점도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시장에 맞서는 형국”
하지만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통계 불신이 생기면 매우 심각한 일이 나타날 수 있어요. 통계에 따라 복지지출의 기준이 되는 소득수준이 고무줄처럼 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럼 예산도 왔다갔다 할 거고, 아마도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겁니다. 통계 때문에 정권의 명운이 결정될 수도 있는 거죠.”
기존 조사가 불평등도를 과소 반영해 문제가 돼왔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보다 실제 소득 격차가 더 크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을 것 같은데요.
“국세청 소득세 자료에 따르면 2010년을 기점으로 미미하긴 하지만 근로소득에 의한 불평등도가 다소 완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 추세가 2016년까지는 유지됐어요. 최근 2년간의 양상은 아직 소득세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가계동향조사 통계는 믿기 어렵고요.
다만 고용동향 지표가 상당히 악화하고 있잖아요? 고용 데이터는 개편한 바 없는데도 고용 증가세가 확연히 둔화됐습니다. 이 지표를 근거로 보면,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의 소득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요.”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이 최하위, 그러니까 시간제나 아르바이트, 초단기 일자리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최저임금을 급속히 올릴 때 고용이 마이너스 영향을 받을 거라는 건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경제 논리입니다. 상당한 영향이 있었을 거예요.”
주 52시간 근무가 고용 창출을 유도할 거란 기대감도 있는데요.
“정부는 기업들이 사람을 더 뽑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겠죠. 물론 그런 효과도 있을 테지만, 다른 대응도 나올 수 있어요. 사람의 일손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으로 사람을 대체하는 설비 투자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고용지표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폭 확대를 꼽았습니다. 100년 단위의 통계를 연구해오셨잖아요. 기재부 주장을 어떻게 보세요?
“너무 무리한 주장이죠. 인구구조 변화라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 구조적으로 심화돼나가는 건데 유독 지난 1~2년간 영향이 컸다? 궁여지책 같은 논리예요.” 문재인 정부가 내건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 소득이 늘면 소비도 늘고, 이에 따라 경제도 성장할 거라는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원래는 ‘임금주도성장’이었죠. 선거 국면에서 ‘임금근로자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모느냐’란 비판을 흐리기 위해 물 탄 표현이 된 겁니다 소득주도라는 단어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돼요. 소득이 늘어나는 게 성장이라는 뜻 아닌가요? 이런 표현이 어떻게 한 정부의 경제정책을 표현하는 슬로건이 되어있으며 신문을 매일 장식하고 있는지…. 말을 정확히 안 쓰면 어떻게 의사소통이 되겠어요? 대체 이걸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는지 모르겠어요. 번역 못 합니다.”
“소득주도성장? 물 탄 표현”
찾아보니 국내 영자신문사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소득주도성장을 영어로 ‘Income-led growth’라고 표기했다. ‘로이터’도 8월 26일 기사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Wage-led growth(임금주도성장)’에서 단어 하나 바꾼 셈. 김 교수는 답답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재분배 필요성은 시장을 중시하는 학자들도 모두 동의해요. 하지만 재분배 방식은 시장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시장과 맞서고 있어요. 최저임금인상은 가격에 손대는 겁니다. 가격을 놓고 온갖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데, 아우성이 나올 수밖에요.
재분배가 의도라면 근로장려금(EITC)을 쓰면 됩니다. 최근에 정부도 EITC를 확대한다고 하던데, 그걸 처음부터 썼으면 불필요한 논란이 안 생겼죠. 필요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세금을 쓰자는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도 일자리안정자금 등 지원금 때문에 결국 세금을 쓰고 있잖아요.”
정부가 진단부터 잘못했다는 건가요? 정부 대책이 되레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불평등이 더 심화됐다고 아직 단언할 수는 없어요. 국세청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으니 양상을 정밀하게 드러낼 데이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은 결국 정부가 나서서 재분배하겠다는 거잖아요. 시장을 보듬고 가야 하는 거지, 시장에 맞서는 형국이 돼버려서 원래 의도한 결과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용이 줄고 있다는 게 단적인 증거예요.”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연구하면서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활용한 방법을 썼어요. 하지만 피케티가 불평등 해소책으로 주장한 ‘글로벌 부유세’에는 반대했습니다. 정부·여당은 부동산 대책으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했습니다.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까요?
“강남에 좋은 집 한 채 갖고 있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죠. 집값이 오르면 종부세를 많이 내겠죠. 하지만 거주자 입장에서 그건 실현되지 않은 소득이에요. 가치가 얼마인지는 거래가 이뤄질 때 매겨지는 겁니다. 지금 소득이 없는데 그 집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 거예요. 저항이 엄청나게 일어날 수밖에요. 실현되지 않은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복지는 좋은데 과세는 안 한다?”
종부세가 반발에 직면하는 건 부유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피케티 스스로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지만, 부유세 탓에 해외로 나가버릴 수가 있어요. 결국 국제 공조가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한 겁니다.
우리나라를 볼까요. 일부 상위계층에 부담을 몰아준다고 해서 불평등이 해소되고 복지 재원이 마련되는 게 아니에요. 고복지 국가가 왜 고세금 국가겠어요? 보편과세를 하니 보편복지가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보편복지는 좋지만 보편과세는 안 하겠다? 정치인들의 사탕발림 같은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간 소득불평등을 다룬 김 교수의 논문은 진영의 입맛대로 활용돼왔다. 불평등이 악화됐음을 증명한 2014년 논문에는 진보진영이 환호했다. 반면 2010년대 들어 근로소득 불평등이 다소 줄었음을 밝힌 2018년 논문에는 보수진영이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기울였다. 정치적 진영 논리에 누구보다 거부감이 클 터.
“지금 정부는 경제정책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두고서 ‘기득권 수호를 위해 공격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잖아요. 정치 논리로 대응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시장이 얼게 됩니다. 시장을 살리면서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부가 되어야 해요. 통계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면 아무도 안 믿게 될 겁니다. 정부가 이번에 이 점을 제대로 깨달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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