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속도를 내기로 한 것은 입국장 혼잡 등을 이유로 내세운 일부의 반대에도 민간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추락하는 경제를 떠받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자리 창출의 핵심인 기업들이 여전히 각종 규제에 묶여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고용과 소비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본다. 개별 산업에 대한 규제개혁에 그칠 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규제를 풀어야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 15년 만에 입국장 면세점 도입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출국할 때 공항에서 물건을 산 뒤 여행 기간 동안 이를 들고 다니거나 국내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해외 면세점에 들러 쇼핑했다. 여행객이 불편할 뿐 아니라 한국인 관광객의 해외 소비가 늘어나는 원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03년부터 6번에 걸쳐 입국장 면세점 도입이 추진됐지만 기존 면세점 업계의 반발과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무 부처의 반대에 밀려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공전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해외여행 3000만 명 시대인데 입국장 면세점이 없어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편의성 제고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규제개혁으로 새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대통령의 발언에 담겼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관료들이 비로소 움직였다.
정부는 입국장 면세점이 들어서면 해외여행객의 소비가 국내 소비로 전환되고 물류, 판매 등 면세점과 관련한 일자리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위해 입국장 면세점 사업권과 상품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중소·중견기업에 주기로 했다. 이는 과거 규제개혁의 과실(果實)이 대기업에 집중됐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 조치로도 풀이된다.
○ 해외 송금 등 외환 규제도 완화
아울러 정부는 외환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내년 1월부터 증권사와 카드사에 계좌를 가진 이용자는 연간 3만 달러까지 해외에 돈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은행 계좌로 돈을 옮긴 뒤에야 해외 송금이 가능했다. 사실상 은행이 독점해 온 해외 송금 시장을 증권사와 카드사에도 열어줘 약 5% 수준인 해외 송금 수수료를 낮추고 금융투자업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다.
또 해외에서 돈을 받을 때 하루 5만 달러까지는 별도 서류를 은행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핀테크 업체가 은행에서 환전해 주지 않는 외국 동전을 대신 환전해줄 수 있도록 외국환 거래 규정도 개선하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소비자들의 불편을 덜어주면서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혁신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이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 만들어야
이날 정부는 지역특구법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융합법 등 규제 샌드박스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혁신성장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고 자평했다. 여기에 입국장 면세점이 도입되고 외환 규제가 완화되면 일자리 시장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도 담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급한 자화자찬이거나 장밋빛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규제개혁에 의지를 보이는 것은 좋지만 추락하는 고용을 되살리려면 기업이 요구해 온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간 기업의 투자를 끌어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고용재난과 소비절벽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고 부작용을 감시하는 기능만 하라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이 현재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나가는 게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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