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국 공군의 차기 고등훈련기(APT) 교체 사업 입찰에 실패했다. KAI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통해 입찰에 참여했지만 경쟁사인 미국의 보잉사에 밀렸다.
미 공군은 27일(현지시간) 오후 5시께 홈페이지를 통해 차기 고등훈련기 입찰에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규모는 92억 달러(약 10조2000억원)다.
미 공군은 노후 훈련기 T-38C를 대체할 351대의 훈련기와 46대의 시뮬레이터를 구입하기 위해 이번 입찰을 벌였다. 입찰에는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 보잉-사브 컨소시엄,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가 참가했다. 미 공군은 당초 훈련기 교체 비용으로 197억 달러(약 21조9100억원)를 예상했지만 경쟁 입찰을 통해 비용을 크게 낮췄다.
보잉-사브 컨소시엄은 BTX-1을 내세웠고 KAI는 파트너사인 록히드마틴과 함께 토종 고등훈련기 ‘T-50’을 개조한 ‘T-50A’모델을 앞세워 지난달 15일 최종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번 APT 수주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가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업계에서는 보잉이 파격적 저가 입찰을 통해 수주전에 사활을 걸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실제로 성능 면에서는 T-50A가 우세하다는 평가였지만 보잉의 BTX-1은 3D프린팅 시스템 등을 통해 제작비용이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KAI 측은 “최저가 낙찰자 선정방식에 따라 보잉이 선정됐다”며 “록히드마틴사는 KAI와 협력해 전략적인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했지만 보잉사의 저가 입찰에 따른 현격한 가격차이로 탈락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보잉의 ‘저가입찰’ 전략에 밀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사실 이게 8월에 결론이 났어야 하는데 미 공군이 일정을 연기시켰다”며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은 이미 완성된 T-50으로 입찰에 참여했지만 보잉은 개발 중인 훈련기로 사업에 입찰했다. 이미 미 공군이 일정을 연기했을 때부터 보잉의 편의를 봐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사실 이번 수주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었는데 우리 역시 가격을 더 많이 깎을 수 있었다”며 “록히드마틴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가 세제 혜택이나 부가세 면제 등을 통해 가격을 많이 낮출 수 있는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KAI입장에서는 전체의 25%, 약 4조원 정도 대거 수주할 수 있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번 수주가 성공하게 되면 아메리카 프리미엄을 통해 전 세계 훈련기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날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은 “원인은 가격을 못 맞춰서 떨어진 것밖에 없다”며 “보잉은 이번에 시험비행을 겨우 마친 새로운 비행기지만 3D프린팅 등을 통해 제작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가격 요건을 정확히 맞춰 수주에 성고했다”고 분석했다.
양 센터장은 “핵심 요소는 가격”이라며 “훈련기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능보다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조종사를 키워낼 수 있을지 시스템의 문제인데 록히드마틴-KAI 컨소시엄은 범용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KAI가 지난해 방산비리 의혹 등으로 홍역을 치른 뒤 부임한 김조원 사장은 감사원 출신으로 항공 관련한 전문적 지식이 없다”며 “수주를 위해 치열하게 가격을 깎고 노력하기 보다 적폐청산 등에 더 중점을 둔 게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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