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던 강모 씨(36)는 시장에 갔다가 송편 가격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작년 이맘때 kg당 7000원 정도였던 송편이 올해는 1만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강 씨는 “추석에 송편이 빠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샀지만 가격이 올라 좀 놀랐다”고 말했다. 가격을 올려 파는 떡집 주인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서울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45)는 지난달 단골들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쌀값이 올라 부득이하게 떡값을 올리게 됐다”는 문자를 돌렸다. 이들 쌀 소비자와 쌀 가공업자는 모두 ‘도대체 왜 쌀값이 이렇게 오르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다. 시중에는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서 공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과연 쌀값이 오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 쌀 방출 시기 놓친 데다 작년 생산도 감소
북한에 쌀을 퍼줘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문은 쌀을 유통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유통업체들이 재고 부족을 호소하면서 증폭됐다. 올 1∼3월 산지유통업체가 보유한 재고량은 1년 전보다 35만∼37만 t가량 적었다.
하지만 이 소문은 거짓이다.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은 1995년 시작된 뒤 매년 10만∼40만 t가량 지원하다가 2011년부터 전면 중단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쌀 5만 t을 보내려면 전국의 4개 항구에서 두 달간 꼬박 배에 실어야 하는 만큼 정부 비축미를 몰래 반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최근 쌀값이 급등한 주된 원인은 정부가 쌀 매입량을 늘린 뒤 방출을 제때 하지 못한 데다 2017년산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쌀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편승해 일부 농가가 출하 시기를 늦추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분석에 정부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실제 2016년산 쌀값이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지난해 정부는 쌀값을 올리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다. 시장에서 남아도는 쌀을 모조리 사들였다. 정부가 사들인 2017년산 쌀은 공공비축미 35만 t과 시장격리물량 37만 t을 합해 72만 t에 이른다. 2016년에도 69만 t가량을 사들였지만 그때는 쌀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3만 t 많았다.
정부가 사들인 양은 늘었는데 2017년산 쌀 생산량은 397만 t으로 2016년(420만 t)과 2015년(433만 t)보다 5∼8% 줄어들면서 문제가 커졌다. 벼 재배면적이 1년 전보다 3.1%가량 줄어든 75만5000ha에 그친 데다 봄 가뭄 등으로 작황이 부진했던 탓이다. 시중에 풀린 쌀이 예년보다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확기 쌀값은 올라갔다. 이를 본 일부 농가는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출하를 미뤘다. 경기도에서 민간 미곡종합처리장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쌀값이 오를 조짐이 보이자 일부 대농(大農)들이 쌀을 내놓지 않아 물량이 더 모자랐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정부는 사들였던 쌀을 시장에 내놨지만 가격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해 4, 6, 8월 세 차례에 걸쳐 총 22만2000t이 추가로 풀렸지만 이미 올라간 쌀값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여기에 쌀 재배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폭염과 병충해 등으로 작황이 부진하다는 소문이 더해지면서 가격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정부는 8월 말 기준으로 160만 t의 쌀 재고물량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가격 하락을 우려해 더는 방출하지 않았다.
쌀 가격은 지난해 7월 중순부터 14개월 연속 올랐다. 이달 15일 80kg들이 한 가마니의 산지가격은 17만847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5%, 평년보다 15.9% 높았다. 1년 치를 일정한 금액에 계약해 유통하는 일부 물량 외에는 산지가격이 소비자가격에도 반영됐다.
갑자기 높아진 쌀값을 바라보는 소비자와 농업인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소비자들은 “안 그래도 밥상물가가 크게 올라 힘든데 쌀값까지 오르니 부담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쌀을 취급하는 식당이나 떡집 등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농업인들은 ‘풍년으로 2013∼2016년 계속 폭락했던 쌀값이 제자리를 찾은 것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추석 직전인 20일 가진 출입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산지 쌀값은 5년 전 수준”이라면서 “현재 가격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비축미를 방출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밝혔다. 실제로 5년 전인 2013년 10월의 평균 쌀값은 80kg당 17만8551원으로 올 9월 가격보다 높았다.
○ 올 수확기 쌀값도 작년보다 높을 듯
10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수확이 시작되면 일단 쌀값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생산량 감소로 올해 수확기 평균 쌀값은 지난해보다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급량이 적었던 올해 7, 8월보다는 가격이 내려가지만 지난해 수확기(80kg당 15만3213원)보다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는 폭염과 병충해 등이 기승을 부린 데다 재배면적도 감소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0만∼15만 t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쌀값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는 올해 하반기에 정해질 쌀 변동직불금의 목표가격이다. 정부는 목표가격과 실제 거래가격의 차액을 농가에 보전해줘야 한다. 정부로서는 실제 쌀값이 비싸져야 직불금에 드는 예산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재정 부담을 덜려고 적극적으로 쌀값 안정에 나서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쌀값 오르니 ‘직불금 예산’ 대폭 절감 ▼
농가 소득보전 위해 2016년 ‘쌀 변동직불금’ 1조4900억 투입
농업인 소득보전제도인 쌀 변동직불금은 정부가 매년 쌀의 목표가격을 정해 놓고 실제 쌀값이 이에 못 미치면 그 차액을 보전해 주는 것이다.
쌀값이 하락한 2014∼2016년 변동직불금 규모는 급증했다. 2011∼2013년산(産)에는 아예 지급되지 않았던 변동직불금이 2014년산에는 1941억 원, 2015년산에는 7257억 원 지급됐다. 20년 만의 최저가격으로 폭락한 2016년산 쌀에는 무려 1조4900억 원이 투입됐다.
정부 지출이 증가하자 쌀 변동직불금제는 대표적인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산업 발전에 쓸 수 있는 막대한 돈을 직불금으로 지출해야 되냐’는 볼멘소리도 많았다. 쌀값이 오르자 비로소 변동직불금 증가세가 꺾였다. 정부가 2017년산 쌀에 지출한 변동직불금은 5392억 원으로 2016년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내년 예산에도 변동직불금은 5775억 원이 반영돼 있다.
쌀 목표가격은 5년에 한 번씩 다시 설정한다. 정부는 2019∼2023년 적용할 목표가격을 올해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확정해야 한다. 현재 80kg당 18만8000원인 목표가격을 두고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소한 19만4000원 이상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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