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올 수출 1억달러 ‘국민채소’ 이름값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9일 03시 00분


전북 남원 재배농장 가보니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대규모 파프리카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는 이정구 씨(가운데)가 이수원 춘향골바래봉파프리카 작목회 회장(왼쪽) 등과 함께 파프리카의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남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대규모 파프리카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는 이정구 씨(가운데)가 이수원 춘향골바래봉파프리카 작목회 회장(왼쪽) 등과 함께 파프리카의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남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8일 찾아간 전북 남원시 운봉읍의 파프리카 비닐하우스는 평소 생각하던 비닐하우스와 달랐다. 면적이 7900m²(약 2400평)가량으로 넓고 높이도 키가 6m까지 자라는 파프리카보다 높아 거대했다. 하우스 안에서는 지게차가 오가며 튼실하게 익은 빨강 노랑 주황색의 파프리카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하우스 규모뿐만 아니라 외부인 통제가 엄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균(菌) 유입을 우려해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아 이날 방문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주선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국내에 들어온 지 20여 년밖에 되지 않은 파프리카가 올해 처음 1억 달러(약 1100억 원) 수출을 앞둔 ‘신선 농산물 제1의 수출 제품’인 이유를 일부 알게 하는 현장답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비닐하우스 농장 주인 이정구 씨(37)는 “추석을 전후로 밀려든 내수와 수출 주문량을 맞추느라 지게차에서 내려올 틈도 없다”며 “1박스(5kg)가 4만5000원 정도지만 물건이 좋으면 6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고 수확이 늦어질수록 가격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스마트팜 확대로 도입 20여 년 만에 ‘국민 채소’로

파프리카는 1995년 조기심 씨(현농업회사법인 농산 대표)가 네덜란드산 파프리카 씨를 일본에서 가져와 전북 김제의 약 1.1ha 땅에서 처음 재배한 것이 국내 생산의 시작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파프리카 원조인 네덜란드산과 뉴질랜드산이 장악하고 있던 일본 시장을 점령했다. 까다로운 일본 시장을 공략하면서 우리만의 고급 재배, 생산 기술 노하우가 적잖이 쌓였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모바일 기기를 활용하는 스마트팜 보급률이 높아졌다. 노란 빛의 파프리카는 생긴 모습처럼 ‘골든벨’을 계속 울리는 중이다.

이 씨의 농장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비닐하우스 내 10개 온실의 온도, 습도 등이 한눈에 보인다. 복합 환경 제어시스템으로 온실 내 수분과 이산화탄소 농도에 맞는 환기, 난방까지 ‘원 클릭’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모종을 한 흙에도 물과 영양분이 일조량에 맞게 자동으로 투입된다.

파프리카 줄기 곳곳에는 천적 곤충이 담긴 종이팩이 붙어 있다. 종이팩 윗부분의 구멍으로 곤충들이 빠져나와 파프리카를 공격하는 해충들을 잡아먹는다. 파프리카를 해치는 점박이응애, 담배거세미나방, 진딧물 등의 해충을 이들의 천적 곤충으로 잡아낸다.

○ 농가 협력으로 품질 향상

파프리카 개별 생산자들이 모여 조합법인이나 생산자협의회 같은 전문 생산단지를 만들어 공동으로 품질 향상, 전문기술 보급 등을 하는 것도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높인다. 농림부와 aT 등에 따르면 현재 전문 생산단지는 전국 36곳으로 429개 농가가 가입돼 있다. 같은 단지에서 나온 상품들은 공동 브랜드로 산지 유통업체나 지역 농협의 공동 선별장으로 보내져 출하된다.

남원은 고랭지 지역이어서 여름 작형(作形·수확형) 파프리카를 재배한다. 여름 작형은 보통 1월에 파종해 5월에 꽃이 피고 이후 70일가량 지나면 파프리카가 열려 수확할 수 있다. 경남 진주 함안, 전남 화순 영광 등은 겨울 작형으로 7, 8월에 파종해 11월에서 다음 해 7월까지 수확한다.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 물량은 8900만 달러(약 989억 원)로 국내 신선 농산물 중 1위이며 올해 처음 수출 1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생산량의 44.6%인 3만4842t이 수출됐는데 99%가 일본이다. 일본에서 한국산 파프리카는 2001년부터 경쟁국인 네덜란드와 뉴질랜드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내 한국산 파프리카 점유율은 78.6%. 취재에 동행한 aT 이원기 부장은 “철저한 관리로 6년 연속 일본 수출상품에서 잔류 농약이 검출된 사례가 없다. 게다가 품질도 네덜란드산 파프리카에 근접하고 있고 가격경쟁력도 있어 일본 내 신규 판로 개척에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김덕호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파프리카는 앞으로도 스마트팜 농업을 선도할 품목”이라며 “수출이 더욱 날개를 달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출 시장이 일본에 편중되어 있는 점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aT 이필형 수출전략처장은 “제주나 강원을 중심으로 계절을 타지 않고 연중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처장은 “중국과의 검역 협상이 타결되면 중국 시장으로도 들어가고 한류 붐이 강한 대만과 동남아시아를 공략하기 위한 시장 테스트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씨앗을 모두 네덜란드 종묘 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파프리카 작은 씨앗 한 개가 500원가량으로 3g에 45만 원가량 한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싸다. 이수원 춘향골바래봉파프리카 작목회 회장은 “국산 종자가 있지만 품질이 못 미친다”며 “수출 1위국 위상에 걸맞게 국산 종자를 개발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원=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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