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이정식 씨(43)는 얼마 전부터 앞치마를 두르는 일이 많아졌다. 주말 아침 아내의 식사 준비를 돕는 것을 빼곤 부엌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던 이 씨는 최근 유튜브 동영상까지 찾아가면서 요리를 배우고 있다.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이제는 제법 익숙한 일상이 됐다.
집안일과 거의 담을 쌓고 지냈던 이 씨의 이 같은 변신은 최근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와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열풍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씨는 “회식 포함 일주일에 2, 3회 정도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항상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바람에 집안일에는 손도 못 댔다”면서 “최근엔 술자리도 많이 줄면서 가사 분담을 하기 위해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도입된 가운데 일상에 여유가 생긴 40, 50대 남성들이 요리나 청소 같은 집안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온라인 쇼핑몰 티몬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된 7월부터 지난달까지 3개월 간 식료품, 냉장·냉동식품과 청소기,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40, 50대 남성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요리하는 중년 남성이 늘면서 이 기간 고춧가루, 참기름, 파스타 소스 등 필수 조미료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1% 급증했다. 요리에 서툰 남성들도 쉽게 조리할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 상품 매출은 같은 기간 84% 신장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 30대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판매되던 HMR 상품이 최근 40, 50대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가족들에게 요리를 해주려는 남성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제품 구입 비율도 늘었다. 요리할 때 활용하는 전자레인지와 오븐 매출은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40, 50대 여성 매출이 39%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성장세다. 청소 관련 가전제품도 중년 남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최근 3개월 간 40, 50대 남성의 청소기 매출은 전년 대비 9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나이대 여성(63%)보다 상승세가 가파르다.
공연이나 전시, 키즈카페 등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문화생활 관련 매출도 늘었다. 티몬에 따르면 최근 3개월 간 공연이나 전시, 키즈카페 등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2%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험여행이나 테마카페 등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상품 매출도 183% 늘었다. 맛집이나 뷔페 매출은 같은 기간 178% 증가했다.
전구경 티몬 스토어 본부장은 “집안일에 뛰어든 남성들이 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앞으로 중년 남성고객들을 위한 상품 기획전 등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