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트럭 수천 대가 움직이며 쌀을 나르면 누군가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을 겁니다. 쌀을 몰래 빼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이재갑 대한곡물협회 이사는 정부 양곡창고에 가득 쌓인 쌀 포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올 7월부터 불거진 ‘북한에 쌀을 보내 쌀값이 오른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10일 세종시 부강면의 정부 양곡창고를 찾았다. ‘쌀 밀반출’ 소문이 불거진 뒤 정부가 양곡창고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문은 “북한에 쌀 몇백만 t을 지원해 쌀값이 올랐다는 가짜뉴스가 떠돈다”는 글이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를 정도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 “창고 열려면 4곳에 동시 연락해야”
창고에는 800kg짜리 거대한 공공비축미 포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 창고에 보관된 물량만 총 3330포대, 약 2600t에 이른다.
창고 맨 앞에는 입고일자와 재고량 등이 표시된 현황판과 가로, 세로, 높이, 대각선으로 몇 포대가 쌓여 있는지 표시한 적재도가 있었다. 이 현황판과 적재도는 전국 4676개 양곡창고에 모두 비치돼 있다. 쌀 포대 겉에는 생산자 이름과 주소, 쌀 등급과 검사원 개인 필증 등이 있었다. 쥐를 막기 위한 무릎 높이의 판도 눈에 띄었다. 창고주이자 창고 관리인인 차모 씨는 “습도 조절을 위해 문을 열더라도 쥐나 해충이 들어가지 않도록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창고에서 쌀을 반출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김정락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 서기관은 “일반인인 창고주와 정부양곡 운송회사인 CJ대한통운, 도정공장, 곡물협회까지 총 4곳이 동시에 연락받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갑 이사는 “창고에 보관된 2600t의 쌀을 실어 나르려면 25t 트럭 100대가 필요하다”면서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쌀을 유통하고 관리하는 기관과 수많은 민간인이 쌀 운반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밀반출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3, 4월 베트남과 예멘 등에 원조된 2만 t을 수송하는 데 60일이 걸렸다. 전국의 창고 46곳을 열어 3개의 가공공장을 거친 뒤 군산항까지 수송하는 데 인력 430여 명과 차량 1800여 대가 동원됐다.
○ 쌀값 사상 최고치
쌀 지원을 둘러싼 논란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 돌던 쌀이 시중에 바닥났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kg당 19만4772원으로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곡물협회 관계자도 “민간 미곡처리장(RPC)을 중심으로 유통물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상 수확기를 앞둔 10월 초에는 유통 물량이 부족한 데다 올해는 정부가 쌀값 하락을 우려해 보관물량을 추가로 방출하지도 않았다. 쌀 부족은 북한에 쌀을 보내서가 아니라 계절적인 요인과 정책적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해마다 10월 초는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두고 가격이 오르는 시기”라면서 “수확이 진행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 들어 쌀 해외 원조 물량이 급증한 점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 물량이 북한으로 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식량원조를 시작한 정부는 미얀마와 캄보디아에 총 750t을 지원한 데 이어 올해 세계식량원조협약(FAC) 가입을 마무리하고 6월까지 5개국에 총 6만 t을 지원했다. 정부는 “식량원조협약에 따라 이재민과 빈민에게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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