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에서 만난 M공인중개업소 대표 정모 씨의 설명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집값이 다 똑같다면 어디에 살겠느냐”는 질문에 “일산”이라고 답한 것을 두고 한 이야기다. 일산서구는 김 장관의 지역구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주요 지역의 집값이 크게 오르는 동안 일산의 집값은 거꾸로 내리막을 탔다. 그는 “내년부터 킨텍스 도시개발사업지를 포함해 신규 입주가 이어지는데 3기 신도시까지 고양시에 지으면 죽으라는 거냐”며 답답해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과 함께 1기 신도시의 선두주자로 꼽혔던 일산이 장기간 집값 하락으로 신음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일산동 후곡마을 동성아파트(전용면적 84m²)는 지난달 초 3억6200만 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7월 같은 층이 3억9000만 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2800만 원 떨어졌다. 인근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2016년에 2억9000만 원에 산 후곡마을 태영아파트(전용 72m²)를 얼마 전 2억8000만 원에 판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일산동구 마두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도 “백마마을 5단지(전용 50m²)가 처음에 2억5000만 원에 나왔다가 안 팔리니까 2억3500만 원으로 낮춰 최근 계약했다. 그나마 백마마을은 역세권이라 나은 편”이라고 전했다.
한국감정원 월간 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 9월 사이 일산서구와 일산동구의 아파트값은 각각 2.32%, 1.73% 하락했다. 지난해 8·2부동산대책에서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뒤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간 분당신도시가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평촌신도시가 있는 안양시 동안구는 각각 14.43%, 5.68% 뛰었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지역의 집값 상승세에서 소외된 일산 주민들의 박탈감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여기에 3기 신도시 후보지로 고양시가 거론되자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으로 주민 반발이 커졌다. 최근 3기 신도시 지정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산 투자는 망하는 지름길” “국토부가 일산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산 집값 약세는 고양시와 인근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어지면서 입주물량이 쏟아진 반면 그에 걸맞은 자족 기능이나 교통망이 갖춰지지 않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분당은 판교테크노밸리 등 판교 개발로 업무기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반면 일산은 주변에 택지개발만 이뤄져 거대한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택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고양시에 준공됐거나 조성 중인 택지는 22곳이다.
신분당선 개통 등으로 서울 접근성이 더 좋아진 분당과 달리 일산은 별다른 교통망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큰 호재로 꼽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곧 착공할 거란 기대가 크지만 연내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교통망은 그대론데 인근 파주시 운정신도시 등이 입주하면서 교통 환경은 더 악화됐다. 다른 1기 신도시와 달리 강남 생활권에서 벗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3기 신도시를 만들 때 일산 등 기존 신도시의 실패와 성공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3기 신도시는 기존 1기 신도시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무턱대고 자족 기능을 갖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규모나 입지에 맞게 자족성과 서울과의 연결성 중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 따져보고 조성계획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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