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레시피로 우려낸 뽀얀 국물… 맛보면 다들 놀라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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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5>‘양양곰탕’ 양승희 대표

워킹맘인 양승희 대표는 “오늘 아침에도 녹색어머니회 마치자마자 나왔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음식만큼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믿을 수 있고 깨끗한 음식을 차려 내겠다는 게 양양곰탕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워킹맘인 양승희 대표는 “오늘 아침에도 녹색어머니회 마치자마자 나왔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음식만큼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믿을 수 있고 깨끗한 음식을 차려 내겠다는 게 양양곰탕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제공
15일 서울 강동구 명일전통시장 입구의 농산물 가게에선 “대파 1500원, 오이가 1000원”이라고 흥겹게 외치는 상인들이 보였다. 긴 골목에는 ‘반찬’ ‘건어물’ ‘떡집’ 등이 적힌 간판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명일전통시장은 1974년 명일시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형성된 골목시장이다. 평일 오전인데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가게가 적잖았다. “명일전통시장은 강동구와 자매결연을 해서 인근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고 양승희 양양곰탕 대표(37)는 귀띔했다.

양양곰탕은 지난해 12월 명일전통시장에 문을 열었다. 좌석이 두 개뿐인 작은 매장이다. “포장판매를 주로 하는데, 시장에 들른 손님들이 가게에서 식사를 한다. 그 덕분에 종일 자리가 찬다”며 양 대표는 웃었다.

‘양양곰탕’은 양 대표의 성(姓) ‘양’과 소의 위(胃) 부위를 가리키는 ‘양’을 합쳐 만든 상호다. 대부분의 곰탕은 사태를 넣고 끓이지만 ‘양양곰탕’은 소의 위 네 개 중 두 개에 해당하는 양과 벌집양을 사용한다. 양은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에 소개된 보양식 중 하나로 단백질 함량이 높아 소화가 잘되고 기력 회복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한 뒤 경상도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가 늘 양을 넣은 뽀얀 곰탕을 끓여주셨어요. 양은 겉이 까만데 시댁에선 식구들에게 깨끗하게 먹이겠다며 겉을 벗겨내고 하얗게 손질을 하셨어요. 양에선 특유의 누린내가 나기 쉬운데, 손질한 양에선 냄새가 훨씬 덜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안경사로 12년 일하다가 둘째를 가지면서 안경점을 접은 양 대표는 늘 기회가 되면 다시 일하고 싶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먹을거리를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양가 높은 음식에 관심이 갔고, 시가의 곰탕이 떠올랐다. 그게 창업으로 이어졌다. “마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청년상인’ 모집공고를 보게 됐어요. 명일전통시장이 집과 가까워서 일과 양육을 같이 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어요.” 임차료를 지원받아 곰탕 판매가를 낮출 수 있었다. 양 대표는 대개 1만5000∼2만 원인 곰탕을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은 5kg 정도로 50인분 분량이다.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적절한 온도의 물에 담가놓고, 소금과 밀가루를 사용해 빨래하듯 치대서 양을 닦는다. 이런 손질 과정이 초반엔 대여섯 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세 시간 정도로 줄었다.

매장이 소비자들이 찾기 쉽지 않은 외진 곳에 있어 초기엔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양곰탕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먹을거리여서 털이 복슬복슬한 양이 떠오른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작정 손님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에 양 대표는 가마솥에 끓여낸 곰탕을 싸들고 시장 입구에서 행인들에게 시식을 권했다.

지역 엄마들의 인터넷카페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친밀함을 쌓으면서 가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올 초만 해도 미미했던 매출이 지금은 월평균 800만 원 수준으로 올라갔다.

언제 보람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그는 격주로 매장을 찾는 60대 손님 이야기를 꺼냈다. “소화가 안 돼서 식사를 잘 못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양양곰탕은 부담이 안 돼서 밥 한 그릇 다 비우게 돼 자주 온다고 하셨어요. 기쁘고 감사하더라고요.” 그는 이어 또래 주부들 반응도 소개했다. “곰탕을 사가면서도 ‘프리마’ 탄 게 아니냐, 사골가루 넣었느냐며 실눈을 뜨던 동네 엄마들이 다시 찾아와 ‘양양곰탕만 주면 (아이가) 밥을 잘 먹어요’라며 주문할 때도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그는 최근 곰탕 외에 차돌된장찌개와 찜닭, 부대찌개 등 물만 넣어 끓이면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식품을 선보였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음식을 연구하다가 생각해낸 것들이다. “레시피를 만들면 인터넷을 통해 주부 200여 명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뺄 건 빼고 보완할 건 보완해요. 메뉴 개발에 아끼지 않고 투자할 생각입니다.” 장래 계획을 묻자 양 대표는 “반조리 식품을 당일 전국으로 배송할 수 있는 업체로 성장시키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양양곰탕#양승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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