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23일 내놓은 5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은 ‘유통·화학·온라인’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성됐다. 롯데그룹이 유통과 화학이라는 양날개로 도약하는 동시에 이미 대세가 된 ‘온라인’에 방점을 찍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롯데그룹은 23일 향후 5년 간 국내외에서 50조원을 투자하고, 7만명을 고용하겠다는 투자 및 채용계획을 발표했다. 투자금액은 최근 5년간 투자실적 36조4000억원에 비해 37%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반면 채용은 지난 5년 간 고용인원 7만3000여명보다 약 4% 줄었다.
8개월 간의 구속기간을 마치고 복귀한 신 회장이 ‘획기적 투자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에는 다소 못미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롯데의 경영시계를 빠르게 정상화하고 국가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지난 8일 경영 일선에 복귀한 신동빈 회장은 이번 투자계획 발표에 앞서 각 사업부문(BU)별로 심도 있는 현안 보고를 받으며 글로벌 경기 전망을 고려한 신사업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 축 ‘유통-화학’ 중심 ‘미래 먹거리’ 발굴 집중
롯데가 발표한 5년간 5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은 그룹의 양 축인 유통과 화학을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에 발표한 50조원 투자액의 4개 사업부문별 투자 금액은 화학·건설이 20조(40%)로 가장 크고 유통과 관광·서비스가 각 12조5000억원(25%), 식품은 5조원(10%) 선이다.
화학의 경우 공장 하나를 짓는 데에만 수조원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여수, 울산, 대산 지역에 지속적인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에 4조원 규모의 유화단지 건설을 실행에 옮기는 등 원료 지역 다변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롯데의 화학부문은 2014년 영업이익률이 2.5%에 불과했지만 수급상황 개선에 따른 수익성 개선으로 2016년 17.3%, 2017년 18.46%에 달하는 등 롯데그룹의 주력 사업부문으로 자리 잡았다.
화학부문의 수익성 개선으로 롯데의 전통적인 주력사업부문인 유통부문의 영업이익률이 2012년 6.1%에서 2016년 3.9%로 떨어지고, 관광·서비스가 같은 기간 7.7%에서 4.5%로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롯데그룹 전체 영업이익률은 2015년 5.5%에서 2016년 6.5%로 상승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화학분야 영업이익률도 다소 감소하는 추세다.
경기 침체와 정부의 영업 및 출점규제,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영향 등으로 고전해 온 유통의 경우 ‘숙명’이라고까지 밝힌 온라인사업의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롯데는 온라인사업의 핵심 조직인 e커머스사업본부의 본사를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연내에 옮기는 한편, 향후 3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옛 롯데닷컴과 롯데멤버스, 롯데카드 등이 보유한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과 같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상품 개발 등에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오프라인의 경우 그나마 규제가 덜한 복합몰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다만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대형마트에만 적용되던 월 2회 의무휴업과 같은 영업규제를 복합몰에도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향후 롯데의 복합몰 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식품사업, ‘인공지능-가정간편식’에 초점
그룹의 모태였던 식품 사업 투자는 인공지능(AI)과 가정간편식(HMR)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업들이 제품을 개발하고 선보였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AI로 포착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미 롯데제과는 약 2년간 개발한 AI 트렌드 예측 시스템 ‘엘시아’(LCIA·Lotte Confectionery Intelligence Advisor)를 지난 8월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엘시아는 AI를 통해 소셜 데이터와 포스 판매 데이터·날씨·연령·지역별 소비 패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식품에 대한 미래 트렌드를 예측해 이상적인 조합의 신제품을 추천한다. 아울러 추천한 신제품의 3개월 후 8주간 예상 수요량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알파고와 같이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적용해 시간이 흐를수록 예측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게 했다.
앞으로 엘시아를 생산·영업 전반뿐 아니라 다른 식품 계열사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한 롯데 식품 계열사에서는 “AI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으며, 내부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커지는 HMR 시장도 놓칠 수 없다. 신동빈 회장은 HMR 사업에서 미래 식(食)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HMR 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육가공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롯데푸드 김천공장에 12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1월 완공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간 HMR 전용공장인 평택공장과 등을 내세운 ‘투트랙 전략’으로 HMR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낼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HMR 부문에서 과감한 투자로 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을 잡고 시장에서 롯데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판단이다.
◇상장 앞둔 ‘호텔롯데’, 면세점-호텔 분야 M&A 활발할 듯
관광&서비스 분야에서는 상장을 앞둔 호텔롯데의 면세점 수익성 개선 및 해외사업 확대, 호텔사업 체인화 등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최근 인천공항 T1구역 면세점 일부 매장에서 철수한 롯데면세점은 국내에서는 시장 점유율 고수를 위한 마케팅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 사업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호주의 JR 듀티프리를 인수한 바 있는 롯데면세점은 2023년까지 오세아니아 최대 면세사업자로 올라선다는 계획이다. 롯데면세점은 앞선 2012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현재 일본 긴자와 간사이공항·미국 괌공항·인도네시아 자카르타시내·태국 방콕시내·베트남 다낭공항·나트랑깜란공항에 매장을 여는 등 해외사업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국내 19개, 해외 11개 등 총 30개 사업장에 1만여 개 객실을 운영하는 호텔사업도 지속해서 인수합병을 검토할 계획이다.
롯데는 호텔뿐만 아니라 향후 화학, 유통, 식품 등의 분야에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할 계획이다.
신동빈 회장의 8개월여 공백으로 진행이 더뎌졌지만, 롯데는 올해만 하더라도 동남아시아(유통, 식품, 관광)에서에 5500억원, 미국(관광, 화학)에서 2조7000억원, 유럽(화학)에서 3조5000억원, 국내(유통, 식품, 서비스) 4조7000억원 등 총 11조4500억원의 인수합병을 검토했다.
이와 함께 롯데는 향후 5년간 7만명을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 5년 간 고용인원 7만3250명에 비해선 4.4% 가량 줄어든 인원이다.
롯데그룹은 2013년 1만5500명, 2014년 1만5650명, 2015년 1만5800명, 2016년 1만3300명, 2017년 1만3000명 등 지난 5년 간 총 7만3250명을 고용했다. 올해의 경우 대내외 여건이 악화돼 연말까지 1만2000명 채용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롯데는 2019년에는 경영정상화 및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올해보다 약 10% 증가한 1만3000명 이상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유통부문의 이커머스(e-commerce) 분야에서 많은 채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매년 채용 규모를 차츰 늘려나가 2023년까지 7만명을 채용, 국가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투자계획과 관련 주요 경영진에 “어려운 환경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가치를 적극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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