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충격…체질개선 없인 한국車산업 ‘공멸’

  • 뉴스1
  • 입력 2018년 10월 28일 09시 04분


판매 감소·수익성 악화에…무역전쟁 등 대외환경도 나빠
완성차 부진→협력사 도산→산업 생태계 붕괴 ‘악순환’

25일 오후 경기도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18.10.25/뉴스1 © News1
25일 오후 경기도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18.10.25/뉴스1 © News1
총체적인 위기다. 국내 자동차 산업 얘기다. 현대·기아차의 3분기 실적이 곤두박질치며 곳곳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현대·기아차가 올해 초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을 실시하며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미국은 한국산 등 수입 자동차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 중국에서의 판매부진은 고착화된 모양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체 시장이던 신흥국은 경기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현지 통화가치가 떨어지다 보니 신흥국에서 차를 팔아도 제대로 된 마진을 남기기 어려워졌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무척 어렵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시원찮은데 고비용·저생산상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해외시장에서 완성차는 팔리지 않고, 이로 인해 기초 체력이 약한 협력사 및 부품사들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현대·기아차마저 ‘어닝쇼크’…부품사들 한계상황 내몰려

28일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두 회사 3분기 영업실적을 시장의 기대를 크게 저버렸다.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나 급감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2010년 이후 최악이다.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3.8%포인트 떨어진 1.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기아차까지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기아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1713억원, 영업이익률은 0.8%에 머물렀다. 외견상 영업이익이 전년비 흑자로 돌아섰으나 당초 시장 예상치 2800억원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지난해 3분기에는 통상임금 패소 관련 비용이 반영됐던 만큼 사실상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볼 수 있다.

내수는 물론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내 잇단 차량 화재사고라는 대형 악재까지 겹쳤다.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위기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수익성 악화는 현대·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쌍용차도 3분기 적자를 면치 못했다. 영업손실은 2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폭이 45억원 이상 증가했다. 올해 누적 영업손실액만 606억원이다.

한국지엠(GM)의 경우 희망퇴직금 등 일부 경영정상화 과정에 들어간 비용을 손실로 잡아야 해 적자 규모가 1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판매 정상화가 급선무지만, 최근 R&D 법인 분리 문제를 노조가 문제 삼으며 사내 갈등이 커졌다.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에 빠져있는 르노삼성자동차는 5개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임금 및 단체협상도 타결하지 못했다.

◇ ‘고임금 저생산성’ 구조적 문제…위기 탈출 전략 “쉽지 않아”

한국 자동차 산업의 고질병은 고임금·저생산성 문제다. 기초 체질을 다져 위기를 빠져나와야 하지만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가다간 과거 몰락의 길을 걸었던 디트로이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판매량 감소에 수익성 악화까지 겹쳤는데 인건비는 날로 치솟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국내 자동차 5개사의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은 12.29%로 일본 토요타(5.85%), 독일 폭스바겐(9.95%) 등 경쟁업체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기준 국내 완성차 5사의 연간 평균임금은 9072만원으로 2005년 대비 81.1% 올랐다. 이는 폭스바겐(6만5051유로·8487만원), 토요타(832만엔·8344만원)의 연간 평균임금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임금은 높지만 경쟁국 대비 생산성은 낮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1대 생산 시 투입시간은 26.8시간으로 토요타(24.1시간), GM(23.4시간)보다 높아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후진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2.7% 감소한 411만4913대로 집계됐다. 10대 생산국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감소하며 6위에 머물렀으나 멕시코와 스페인, 브라질 등 경쟁국과의 격차는 더욱 좁혀졌다. 수출도 전년 대비 3.5% 감소한 253만194대에 그쳤다.

◇ ‘완성차 기침에 협력사는 몸살’…생태계 붕괴 우려도

완성차 업체의 실적 부진이 협력사와 부품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완성차가 팔리지 않으면 협력사들의 납품량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매출 하락과 공장가동률 하락, 연구개발 비용 축소 등으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최근 자동차 부품업계는 정부에 3조1000억원에 달하는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국내 완성차업체 1차 협력사 800여곳을 대상으로 정부 지원이 필요한 금액 규모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올해 1분기 1차 부품 협력업체 상장사 89개 중 절반가량이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완성차 업체에 비해 버틸 여력이 부족한 협력사들은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완성차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결국 R&D 분야에 중점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단기적으로는‘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뜯어고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장기적 측면으로 봤을 때 R&D 비용을 늘려야 하지만, 글로벌 업체와 벌어진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면서 “효율성 제고를 위해 임금 동결 및 삭감에 나서야 하는데 이미 업계 생태계 붕괴가 시작된 상황에서 노사 간 협업이 절실한 시기”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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