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를 공동 개발한 샌디 래트레이 맨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증시가 당분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달 들어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급락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10년간 이어진 미국 증시의 강세장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래트레이 CIO는 “지속적인 채권 금리 인상이 미 증시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며 “향후 12∼18개월 동안 영향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올해 초 2.46%에서 이달 들어 3.23%까지 급등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까지 4차례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증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게 래트레이 CIO의 분석이다. 금리가 계속 오르면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서 발을 빼 안전자산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미 증시의 ‘강세장’(불마켓)이 끝났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경기 확장기가 끝났다고 보기에는 미국 경제지표가 아직 양호하다는 판단이다. 래트레이 CIO는 “미국의 재정 건전성은 탄탄하다”며 “경기지표가 좋은 상황에서 강세장만 꺾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래트레이 CIO는 통상 투자심리가 불안할 때 급등하는 변동성지수와 연동된 파생상품이 크게 늘고 있어 오히려 지수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변동성지수는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향후 30일 동안 얼마나 움직일지를 예측해 수치화한 것이다. 그는 “급증한 파생상품이 변동성지수를 움직이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을 위해서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주식이 어려울 때 다른 해외 주식으로 눈을 돌리기보단 채권 등 다른 자산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요즘처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 시기엔 위험 분산을 가장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기일수록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기계학습(머신러닝) 투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래트레이 CIO는 “머신러닝은 방대한 데이터를 취합해 빠른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다. 인간이 찾지 못하는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나 위험을 발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맨그룹은 1783년 설립된 세계 최대 대체투자 운용사로, 현재 1137억 달러(약 128조 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2007년 옥스퍼드대에 설립한 연구소에서 머신러닝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에선 AI를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성과가 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다는 질문에 대해 그는 “머신러닝의 ‘학습’이 빠진 로보어드바이저는 수익률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계의 학습이 인간보다 더 정확하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며 “앞으로 투자 결정에 머신러닝의 활용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래트레이 CIO는 수익률 부진에 직면한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헤지펀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식이나 채권 등 기존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수익률에 만족할 수 없는 시기가 오고 있다”며 “미국 주요 연기금은 헤지펀드 투자를 늘려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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