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저희가 하는 일을 가장 잘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뭐, 틀린 말도 아니고요.”
지난달 30일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 ‘이큐브랩’ 사무실에 들어서자 영어, 중국어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터키어 등으로 제작돼 진열된 회사 소개 책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 수거 관리 플랫폼을 만드는 이 회사의 매출 90% 이상은 해외 실적이다. 권순범 이큐브랩 대표(30)는 전날 호주 출장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세계 50여 개국 쓰레기 수거업체와 대학, 공원 등에 태양광을 이용한 압축 쓰레기통과 쓰레기 수거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권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이던 2011년 친구들과 창업에 나섰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넘치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성격이 강했다. 집에서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아 버리듯, 거리의 쓰레기통에도 압축 기능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쓰레기를 담을 수 있겠다 싶었다. 권 대표는 친구들과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해 주기적으로 쓰레기를 눌러주는 쓰레기통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다 실제 환경미화원들의 반응을 알고 싶어 오전 5시부터 거리에 나가 의견을 물어봤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보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인 점이 불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쓰레기통이 차지 않아 굳이 수거할 필요가 없는 곳도 들러야 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서 ‘수거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니 사업 아이템이 보였다. 권 대표는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 제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쓰레기통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장착했다. 남아 있는 쓰레기양을 측정해 효율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시장이 없었다. 대부분 쓰레기 수거를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는데,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 분류코드가 없어 조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권 대표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주거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설 업체들이 쓰레기 수거를 맡는다는 사실을 알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실제 세계 쓰레기 수거 시장 규모는 연 600조 원이나 되고,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프랑스의 베올리아는 연 매출만 40조 원 수준이다. 권 대표는 KOTRA의 도움을 받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폐기물 처리 분야 박람회 참가를 시작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대성공. 주로 인건비는 비싼데 지리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해야 할 범위가 넓은 나라들이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에 큰 관심을 보였다. 쓰레기 처리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러 업체로부터 시범사업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며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무조건 하루에 3번씩, 일주일에 21번씩 쓰레기통을 비웠지만, 쓰레기를 압축하고 꽉 찼을 때만 수거하도록 하자 수거 횟수가 1주일에 3번까지로 줄었다. 올해 3월에는 약 150억 원 규모의 미국 볼티모어시의 스마트시티 입찰에서 현지 업체를 따돌리고 사업권을 따냈다.
지난해 약 40억 원의 매출을 올린 이큐브랩은 올해 9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한 달에 평균 400여 건의 사업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미국과 독일, 중국에 지사를 뒀고 직원은 약 50명으로 늘었다. 권 대표는 “쓰레기 수거를 원하는 수요자와 쓰레기 수거 업체를 입찰을 통해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라며 “쓰레기차 한 대 없이 전 세계 쓰레기를 수거하는 업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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