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인 ‘J노믹스’ 설계자로 불리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2일 “기업이 병들어 있는데 건강하다고 가정하고 정책을 펴면 기업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가 하강하는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 등의 정책이 속도조절 없이 시행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의장은 이날 서울 중구 삼일대로 라이온스빌딩에서 열린 안민정책포럼 조찬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 등 경제 투톱의 교체가 유력한 가운데 정책이 신뢰를 잃고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은 것이다. ●일자리 줄며 길 잃은 소득주도성장
J노믹스는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라는 3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구조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김 부의장은 “저소득층의 삶을 보장해주면서 소득이 전체적으로 오르면 내수로 연결돼 소득이 전체적으로 올라간다는 ‘좋은 발상’에서 시작됐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정책을 추진하다 일자리가 줄면 근로자 전체로 볼 때 소득이 감소하고 그러면 내수 부양으로 성장한다는 논리가 끊긴다”고 지적했다. 최근 고용 재난 상황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김 부의장은 또 “정의로운 경제는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경제”라면서 일자리를 파괴하면 정의로운 정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이나 직무훈련 같은 사람에 대한 투자 대신 ‘임금과 시간’만 부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람 투자’와 관련해 그는 대학 등록금이 8년 넘게 동결되면서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예로 들었다.
● 기업들 ‘정부가 적으로 보는구나’ 느꼈을 수도
김 부의장은 이날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정책대상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면 독이 된다”면서 “정책 강도와 집행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는 2년 연속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로 인상하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이 잇달아 시행되면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고 있음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의장은 “기업이 움직이면 고용이 나아질 수 있는데 기업이 매우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을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정책을 강하고 빠르게 몰아치면서 재벌기업들이 ‘정부가 자신을 적으로 보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고 했다.
김 부의장은 정책 타이밍을 강조하면서 밀턴 프리드먼의 ‘샤워실의 바보’를 인용했다. 이는 수도꼭지를 급하게 돌리면 뜨거운 물에 데거나 찬물에 놀라는 것처럼 정부가 정책효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부적절하게 시장에 개입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의미다.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단속이 시작되는 것과 관련해 “탄력적인 방향으로 많은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이달 중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실태조사를 마무리하기로 한 만큼 보완책이 나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 경제팀 ‘한 팀’으로 ‘한 목소리’ 내야
구태의연한 관료들의 자세도 도마에 올랐다. 김 부의장은 “공무원이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과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은 효과에서 큰 차이가 난다”면서 “다양한 정책대상과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 “부동산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중개업자, 건설업자와 많은 대화를 했으면 더 세련된 정책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 정책이 한팀, 한 호흡으로 집행되도록 인적 구성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책실장 간의 불협화음을 염두에 두고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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