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만삭스’ 수년째 구호만… 골목대장 못 벗어나는 韓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4일 03시 00분


[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 만든다]1부 손발 묶인 ‘걸리버 금융’
<3>한국 금융도 몸집 키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5개 증권사에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를 내줬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2011년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고 초대형 IB 육성 계획을 발표한 지 6년 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은 멀기만 하다. 현재 5개 증권사 중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로 꼽히는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곳은 2곳뿐이다. 나머지 3곳은 1년째 허송세월하고 있다. 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발목이 잡히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으로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초대형 IB’ ‘메가뱅크’ 육성 구호가 나온 지 오래지만 한국 금융회사들은 ‘골목대장’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가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맞붙기 위해선 몸집을 불리는 게 급선무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금융업의 대형화는 제자리걸음이다.

○ ‘골목대장’ 신세 국내 금융사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국내 은행들도 국제무대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영국 금융전문지 더뱅커가 7월 발표한 ‘세계 100대 은행’에 국내 은행은 6곳만 이름을 올렸다. 이마저도 가장 높은 순위는 국내 리딩뱅크인 KB금융지주가 차지한 59위였다. KB금융의 덩치(기본 자산 291억400만 달러)는 세계 1위 중국공상은행(3241억2600만 달러)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의 규모(자기자본 기준)는 8조1600억 원이다. 세계 최대 IB인 골드만삭스(867억 달러·약 98조 원)와 아시아 1위인 일본 노무라증권(246억 달러·약 28조 원)에 한참 뒤떨어진다.

이렇다 보니 국내 금융사들은 세계 시장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외국계 공룡 금융사들에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진행된 대형 인수합병(M&A), 계열사 매각처럼 돈 되는 ‘빅딜’은 풍부한 자금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앞세운 외국계 공룡들이 휩쓸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국내 금융사의 입지는 더 좁다. 한국전력이 2009년 400억 달러(약 44조7000억 원) 규모로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공사에 국내 금융사도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한전은 유럽계 은행과 손잡고 공사를 진행했다. “UAE 정부가 한국 금융사는 규모가 작아 장기간 돈을 댈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한전 측의 설명이다.

A건설사도 5년 전 중동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따낸 뒤 국내 은행을 자금 조달 파트너로 참여시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동, 유럽 국가들이 아직 한국 금융사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 한국판 골드만삭스 탄생 가로막는 정부

국내 금융사의 덩치를 키워 손실을 감내할 능력을 키우고 글로벌 금융사와 경쟁할 역량을 높여야 하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메가뱅크 육성을 추진했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반발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초대형 IB 육성 계획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일례로 이달 초 금융위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발표한 12가지 혁신과제에 초대형 IB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초대형 IB를 은행 수준으로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당국 일각에서 나온다.

현 정부가 소비자 보호, 감독 강화를 앞세우다 보니 금융사들도 대형화 움직임을 주저한다는 시각이 많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사들의 덩치가 커지면 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이 넓어지고 자연스럽게 실력도 올라간다”며 “성장동력이 떨어진 국내 금융업에 ‘대형화’는 성장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건혁 gun@donga.com·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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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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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골드만삭스#한국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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