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아무리 커져도 심장과 혈맥이 강하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이제 경제의 심혈기관인 ‘금융산업’에서 한국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찾아야 합니다.”
2008년 금융위원회 출범 당시 첫 수장을 맡았던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69)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국내총생산 세계 12위인 한국 경제의 몸집에 맞춰 금융업도 핵심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전 전 위원장은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거친 금융 전문가다. 민간 출신으로 초대 금융위원장에 오른 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은산분리 완화 등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전 전 위원장은 꺼져 가는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을 되살리는 데 금융산업이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 금융의 역동성에서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 금융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금융당국의 ‘감독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전 위원장은 “금융감독원의 영문 표기는 ‘금융에 대한 감독 서비스(financial supervisory service)’라는 뜻인데, 금감원은 감독만 하지 서비스할 생각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선진국 감독당국은 감독을 철저히 하면서도 민간 금융회사와 활발히 소통하고 먼저 ‘우리가 뭘 도와줄 수 있느냐’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데 우리 당국은 이런 자세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대해서는 “민간 금융회사에 과도하게 공공성을 요구하지 말라”란 쓴소리를 내놨다. 카드 수수료, 대출 금리 등 정부의 가격 개입으로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민간 금융사의 사회적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공공성 때문에 국내 금융사들의 수익률이 글로벌 금융사보다 떨어진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 전 위원장은 금융 당국자들의 소극적 태도와 ‘보신주의’에 대한 질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금융당국자들이 규제를 풀었다가 사고가 나면 책임 추궁을 당할까 봐 소극적이다”며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규제 완화의 취지가 좋으면 사후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사회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가 규제 완화 못지않게 예측 가능한 규제 방향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전 위원장은 “금융위기 직후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했는데 다음 정권에서 또 규제 강화로 되돌아갔다”며 “오락가락 정책 때문에 한국 금융이 인터넷전문은행 등 혁신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들의 혁신 노력도 강조했다. 전 전 위원장은 “금융사들의 혁신을 촉진하려면 성과와 연계된 인센티브가 강화돼야 한다”며 “은행에서도 성과가 좋은 차장이 사장보다 연봉을 더 받는 구조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 정부 들어 노조의 입김이 커진 상황에서 혁신이 나타나기 힘들다”며 “경직된 고용시장의 틀을 깨는 노동개혁이 금융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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