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정주영 소떼 몰고 ‘금강산 관광길’ 열어…피살사건 관광중단
10년만에 대북사업 재개 움직임…오늘 금강산서 20주년 행사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그래도 없다면 새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확언한 대로 없던 길을 닦아 남북간 민간 경제협력의 초석을 놓았다.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아 뚫었던 금강산 관광길은 10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끊어져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아산의 숙원 사업이자 가장 아픈 손가락인 ‘금강산관광 사업’이 20주년을 맞았다. 올해가 금강산으로 가는 새 길을 놓는 분기점이다.
현대아산은 18일 오후 금강산 현지에서 관광사업 20주년을 기념하는 남북공동행사를 연다. 행사에는 현 회장 등 현대그룹 임직원 외에 정·관계 등 초청인사와 취재진을 포함해 100여명이 참석한다.
◇‘왕 회장’ 의지로 시작된 대북사업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그룹의 창업자이자 ‘왕 회장’인 정 명예회장이 1989년 방북해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본격화했다.
북쪽 강원도 통천이 고향이었던 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대북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통일이 되면 말년을 고향에서 지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1989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1993년 명예회장이 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부터는 대북사업에 관심을 더 쏟았다. 1998년 500마리의 소떼를 몰아 기업인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을 찾았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은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을 통해 생중계됐다. 외신들은 주요 소식으로 다뤘다. 프랑스 문학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고 칭했다.
왕 회장의 북을 향한 구애는 1998년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정 명예회장은 아들인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1998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금강산관광 개발사업에 대한 확답을 받았다. 앞선 6월 정몽헌 회장이 금강산 관광 계약에 합의했지만 관광 사업 개시가 늦어지고 있던 터였다.
1998년 11월18일 첫 관광객을 실은 금강산행 크루즈선 ‘금강호’가 북을 향해 출발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린 것이다.
◇우여곡절의 10년…결국 ‘중단’
금강산 사업은 첫 길을 뚫는 일 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2000년 현대가(家) 경영권 분쟁과 2001년 정 명예회장의 사망, 계열사 분리·해체로 현대그룹의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그룹에서 분리됐고,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는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에 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유지를 물려받아 대북 사업을 이끌던 정몽헌 회장도 ‘대북 불법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정 회장은 2003년 8월4일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대그룹이 존망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이 전개됐다.
소방수로 등장한 이가 당시 정몽헌 회장의 부인으로 전업주부였던 현정은 회장이다.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금강산관광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2003년 육로관광이 시작돼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누적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2004년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2005년부터 영업이익도 발생했다.
현 회장이 2005년과 7월과 2007년 1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통해 ‘개성·백두산 관광합의서’를 체결하면서 현대아산의 대북관광산업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금강산에선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이어졌다. 1999년 관광객 민영미씨가 북측에 억류되면서 관광이 40여일간 중단됐다. 2005년 12월에는 현대아산 협력사 직원이 승용차로 북한 군인을 치어 숨지게 했다. 같은 해 10월 구룡포 인근 무룡교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20여명이 추락해 3명이 중상을 입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등 남북관계 경색으로 관광객 수가 줄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아산은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6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경협 관계자를 초청한 오찬 자리에서 현 회장은 “고객이 1명만 있더라 금강산관광을 해나가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애끓는 단절, ‘인고의 10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진 금강산 관광은 이명박 정부 집권 첫 해인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중단됐다. 고(故) 박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두고 남·북 정부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우리 정부는 관광객들을 전원 철수시켰다. 정부는 북측의 재발 방지와 신변안전보장에 대한 책임 있는 당국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북측은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현대아산은 이 과정에서 대북사업 재개를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현정은 회장은 2009년 8월 평양을 찾아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만났다. 면담을 위해 5차례나 체류 일정을 연장한 현 회장은 금강산관광 재개,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및 체류 보장, 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업지구사업 활성화, 백두산관광 시작, 2009년 추석 중 이산가족상봉 등 5개 항에 합의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남북 당국간 협의 불발로 관광은 재개되지 못 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극단에 이르자 북한은 2011월 4월 현대아산의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남북경협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위기에 몰렸다. 2016년 2월 개성공단마저 가동이 중단되면서 경협의 끈이 완전히 끊겼다 .2007년 3018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26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97억원에서 영업손실 68억원으로 바뀌었다. 관광 중단 이후 누적 매출손실이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7월 1084명이었던 임직원 수도 지금은 170명 정도에 그친다.
◇현정은의 의지 “반드시 꽃피울 것”
올해는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꼭 10년째인 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간 비핵화 협상으로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대북 사업 재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겠다”고 합의했다.
현대그룹은 즉각 ‘남북경협 TF팀’을 설치했다. 현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고 그룹 내 경협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남북협력 사업의 주요 전략과 로드맵을 세우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했다. 회사를 떠났던 임원들도 다시 회사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대북사업을 ‘역사적 소명’으로 여기고 사업 재개와 정상화를 위해 묵묵히 나아가겠다는 입장이다. 현정은 회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남북한의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을 위한 우리의 사명은 더욱 더 견고해야 할 것”이라며 “선대회장의 유지인 남북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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