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구엘그룹 회장과 둘이 찍은 사진을 보고 주변에서 ‘코가 닮았다’네요. 하하,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이 사람, 장사꾼이 다 됐다. 거래처 대표와 어떻게든 개인적 인연을 엮어 볼 요량으로 집요하고 간절하게 공통점을 찾았던 듯싶다. 오죽하면 ‘발가락이 닮았다’ 수준의, 외국인과 코가 닮았다는 걸 자랑할까.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61) 이야기다. 맥주로 유명한 필리핀 산미구엘그룹 라몬 앙 회장과 일본 도쿄에서 만나 ‘마닐라 신(新)공항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막 도착한 그를 23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공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마닐라 신공항 프로젝트는 포화상태인 마닐라 국제공항의 물동량을 분산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40km 떨어진 도시 불라칸에 새 공항을 짓는 사업이다. 산미구엘그룹이 민자사업으로 정부에 제안했다. 사업비는 총 17조5000억 원으로 내년 2월 사업자를 확정한다. 제안자인 산미구엘그룹이 유력하다.
이번 MOU는 신공항 사업에서 산미구엘그룹과 인천공항공사가 적극적으로 상호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미구엘그룹이 민자 사업자로 정해지면 인천공항공사가 공항 건설부터 운영, 유지 보수 등을 총괄 대행하는 것이다.
정 사장은 이번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산미구엘그룹 간부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했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프랑스, 독일, 일본 회사들도 달려들고 있어요. 어떡합니까, 제가 나서야지요.” 덕분에 라몬 앙 회장이 정 사장을 ‘닥터 정’(정 박사)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
그가 해외 진출에 공들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천공항공사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순이익 1조1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럼에도 정 사장은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권 후발 공항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향후 10∼20년 안에 우리가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했다. 해외 진출은 수익원을 다변화해 후발 주자의 위협에 대비하려는 안전장치다. 그는 “지금처럼 세계 공항서비스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을 때 얼른 신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유는 전후방 연관 효과다. 필리핀 신공항의 경우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공항 건설을 위해 건설사와 감리사에서부터 통신 및 전자 설비, 수하물 처리, 운영 전담 인력까지 패키지로 함께 수출할 수 있다. 정 사장은 “국가 경제에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공항 건설 및 운영의 해외 진출”이라고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1% 미만인 해외 사업 비중(매출액 기준)을 2030년까지 10%로 늘릴 계획이다.
해외공항사업 분야에서는 독일의 프라포트, 프랑스의 ADP 등 해외 경쟁사에 비해 후발 주자이지만 올해 인천공항공사는 여러 성과를 거뒀다. 5월에는 1400억 원 규모의 쿠웨이트 공항 제4터미널 위탁 운영 사업을 수주했다. 인천공항공사가 수주한 해외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정 사장은 이때도 직접 쿠웨이트로 날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 밖에도 현재 조성 중인 터키 이스탄불 신공항에는 운영 노하우 컨설팅사로 참여하는 등 지금까지 14개국에서 28건을 수주했다. 수주액은 2500억 원을 넘었다.
“해외 사업에서는 ‘을’ 중의 ‘을’이 돼야 합니다. 자존심?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사업을 따고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상인(商人) 정일영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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