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대형금융사 인수 제안받고도… 국내 은행법-심사에 막혀 ‘없던 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8일 03시 00분


[강한 금융이 강한 경제를 만든다]2부 눈앞만 보는 ‘우물안 금융’
<5> 정부-금융업계 ‘원팀’ 돼야


2014년 아시아의 마지막 미개척지로 꼽히는 미얀마가 외국계 은행에 문호를 개방하자 세계 각국의 금융사가 눈독을 들였다. 특히 일본은 은행업에 진출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회사, 수출기업이 함께 나서 미얀마에 공적개발원조(ODA), 인프라 개발 사업까지 제안했다. 이런 팀플레이 덕분에 일본은 당시 은행업 인가를 받은 9곳 중 3곳의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한국은 여러 은행이 신청했지만 한 곳도 인가를 얻지 못했다. 이후 국내 금융사들이 미얀마 공무원을 대상으로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금융위원회가 미얀마 은행에도 한국 진출을 허용하겠다는 공식 서신을 보낸 뒤에야 2016년 신한은행 한 곳이 인가를 받았다.

한국 금융사들이 좁은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 무대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이를 뒷받침할 금융당국의 역량이나 제도는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K파이낸스(금융한류)’가 뿌리 내리려면 정부와 금융회사가 ‘원팀’을 이뤄 해외 진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해외 진출 발목 잡는 정부 규제

2년 전 A금융지주는 베트남 현지의 대형 금융사를 인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외 자회사에 대한 출자총액이 자기자본의 최대 4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은행법을 고려하느라 선뜻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에 자기자본의 1% 이상을 투자할 때 받아야 하는 당국의 심사도 더디게 진행됐다. 그사이 인수 제안은 없던 일이 됐다.

동아일보가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6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5%(복수 응답)가 금융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해외 진출 등 시장 확대’가 시급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를 지원할 제도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빗장 규제’가 문제로 지적됐다.

대표적으로 공정거래법 적용을 받는 7개 대형 증권사는 해외에 진출할 때 지분 투자만 할 수 있고 대출 등의 신용 공여는 할 수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 현지 법인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자본을 늘려야 할 때 신용 공여를 할 수 없어 유상증자 등의 방법만 써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선진국은 금융사의 해외 진출과 관련된 규제가 거의 없다”며 “금융사들이 해외에서 겪는 어려움까지 감안하면 국내의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금융사 한 팀으로 뛰어야”

B은행은 베트남에서 현지 사무소 설립 인가를 받기까지 꼬박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개발도상국의 금융 규제는 훨씬 더 엄격하다. 현지 금융당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할 때도 많다”며 “정부 간 협력 없이는 이런 걸림돌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들은 해외에서 맞닥뜨리는 현지의 규제 장벽을 넘으려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금융당국의 역량은 떨어진다. 금융감독원은 해외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해외사무소를 오히려 줄이고 있다. 지난해 “해외사무소 운영이 방만하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현재 금감원 홍콩사무소는 짐을 싸고 있고 싱가포르사무소는 설립 계획을 접었다.

현재 국내 금융사의 해외 점포는 43개국, 435개에 이르지만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해외 담당 인력은 약 20명에 불과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의 해외 진출은 늘고 있지만 당국은 제대로 된 해외 전문가를 육성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엄격한 금융감독의 관행도 걸림돌로 꼽힌다. KB국민은행은 한동안 해외 진출이 금기어로 통했다. 2008년 인수한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의 대규모 손실 책임을 물어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중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진출이 성과를 내려면 정부와 금융사의 협업이 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금융사와 감독당국, 관련 부처가 함께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은 “해외 관료나 금융권 인사들과 오래 교류해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한 전직 관료를 중심으로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금융대사’ 같은 직책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 특별취재팀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경제부 김재영 조은아, 런던=김성모, 시드니·멜버른=박성민, 싱가포르=이건혁, 호찌민·프놈펜=최혜령 기자
▽특파원 뉴욕=박용, 실리콘밸리=황규락, 파리=동정민, 베이징=윤완준, 도쿄=김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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